[담양 마을길이야기] 22. 생명을 품어온 대나무습지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22. 생명을 품어온 대나무습지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11.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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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습지길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터널 연출
대전면 태목리 대나무습지길 / 김정한 사진작가
대전면 태목리 대나무습지길 / 김정한 사진작가

 

22. 생명을 품어온 대나무습지길

 

내륙습지가 되었건 연안습지가 되었건 습지 풍경이란 으레 풀이 우거지고 풀숲 사이로 새떼들이 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나무의 고장답게 담양에서는 습지에도 나무들이 자란다. 대표적인 나무가 버들이다. 길게 이어지는 습지의 물길 사이사이 퇴적층마다 늘어선 버드나무는 습지의 수호자처럼 늠름하다. 그리고 담양하천습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무가 바로 대나무다. 물론 대는 벼과식물 초본류이지만 나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나무로 변신한다. 풀처럼 쑥쑥 자라지만 그 쓰임은 나무와 같기에 우리 선조들은 나무라는 말을 붙여 각종 생활도구로 사용해왔다. 아무튼 그 대나무가 담양하천습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영산강의 상류 강의리부터 연결된 태목리 대나무숲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던 것이 홍수방지와 유속감소를 위해 인위적으로 대나무를 식재하면서 현재의 면적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수해를 막기 위해 관방제림을 조성했던 지혜와 비슷하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해온 담양의 전통은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태목리 대나무숲의 매력은 제방 위 길을 걸으면 또 나타난다. 담양읍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해마다 5월이면 메타세쿼이아가 긴 팔을 벌려 터널을 이루는 장관을 보여준다면, 이곳 태목리 대나무숲에서는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가 터널을 연출하고 있다.

 

담양하천보호습지는 말 그대로 습지 보호를 위해 출입이 제한된다. 제방 위 습지길을 통해서 이 구역을 지나갈 수 있는데, 그 통행길에 바로 대나무 터널이 있다. 그리고 습지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도록 대나무터널 가운데 습지로 내려가는 길을 일부 열고 전망대를 마련해 놓았다. 이곳에 가면 푸른 대나무숲에 펼쳐지는 하얀 백로들의 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백로들이 어디서 사는지, 실제 백로들의 둥지를 볼 수는 없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댓잎 사이를 나는 백로의 날개를 잠시 잠시 볼 수 있을 뿐이다. 울울창창 보이지 않는 대나무숲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하늘로 날려 보내는 백로들의 생존방식이라니외줄기 대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백로들의 잠을 생각하면 실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여름 텃새인 백로는 이 고마운 대나무숲에서 텃새로 정착했다. 산 위의 백로들이 날아드는 숲에서는 배변물 때문에 숲도 피해를 입고 새들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러나 태목리 대나무 숲에서는 비만 오면 배변물이 하천습지로 씻겨나가기 때문에 대나무도 백로도 안전하다. 하천으로 흘러간 배변물은 습지의 무성한 수중식물들이 분해해서 맑은 물을 영산강으로 흘려보낸다. 가마골 시원지에서 흘러나와 담양 백리 물길을 돌아온 온갖 오염물은 담양하천습지에서 걸러져 광주로 나주로 목포 앞바다까지 삼백오십리를 흘러간다. 즉 담양하천습지는 영산강의 허파인 셈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담양하천습지의 일등공신이 바로 대나무군락이다. 그 가치가 인정돼 20201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하천습지가 보호습지로 지정된 것이 담양이 최초였던 것처럼, 대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 역시 전국 최초였다. 그것은 지역민들의 높은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역민 스스로 하천습지 보호운동을 벌이고 20035월에 담양군은 담양습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건의해 200478일 우리나라의 하천습지 중 최초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까지 담양군과 지역민은 수많은 고민과 협의와 생태조사를 거쳤다. 태목리 대나무숲의 천연기념물 지정 역시 수년간의 논의 끝에 이뤄진 일이다. 주민들이 경제적 이권을 포기하고 우리 생태를 지키는 것이 후손들에게 더 좋은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길 따라 언덕에 누정을 짓고 차경을 음미하며, 제방 위에 나무를 심어 우리에게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물려준 선조들과, 군민연대를 조직해 가로수길을 보존하고 습지를 지켜온 우리 지역민들의 높은 생태의식은 세계 어디에 자랑해도 좋은 진정한 문화유산이다.

담양하천습지에는 1억만년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문화유적이 전해오고 있다. 태목리 대나무숲에 부는 바람과 나는 새들은 옛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안부이다. 우리 역시 개발의 이름으로 전국의 하천이 파헤쳐질 때 온갖 생명의 보금자리인 습지를 보호하면서 후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 안부가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바란다.

 

하천이 범람하는 걸 막으려고 대나무를 심어서 보완한 제방 식생, 태목리 대나무습지에서는 하천에서 어린 물고기를 잡아다 키운 어린 새들이 이곳에서 날기를 연습하고, 비로소 날기에 성공하면, 한국의 추운 날씨를 피해 남쪽 나라 필리핀으로 날아간다. 이곳에선 새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걸어야 한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서걱거리며 전해오는 대나무들의 속삭임, 비밀의 정원 같은 대나무 숲. 백로들의 퍼덕거림과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 대숲에서 말없이 풍경에 잠겨보자. 옛사람들은 하늘의 큰 새가 날개를 펼치면 바람이 인다고 믿었다고 한다. 바람의 길을 따라 유목의 언덕을 넘고 습지를 헤쳐 이 땅에 정착한 이들의 발자국과 외줄기 대 위에서 새끼를 재우는 백로들의 수많은 밤들이 이곳에 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해온 담양하천 대나무습지길을 조용히 걸어보자.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