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21. 물길 따라 둑길 따라 수북·봉산 습지로 가는 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21. 물길 따라 둑길 따라 수북·봉산 습지로 가는 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11.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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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습지길
생명을 품어온 경이로운 습지로 가보자
수북면 남산리 습지길 / 김정한 사진작가
수북면 남산리 습지길 / 김정한 사진작가

 

영산강 시원 상류의 맑은 물길에 형성된 담양의 습지는 다양한 퇴적물 입자와 식생으로 구성된 생태계의 보고이다. 철새들과 각종 희귀 생물들의 보금자리이며, 사시사철 자연형 하천의 절경을 보여준다. 수북면 황금리를 시작으로 대전면 대나무군락까지 둑길을 따라 형성된 습지길을 따라 걸으며 고요히 반짝이는 물결과 다양한 생명을 품어온 습지의 경이로움에 빠져보자.

 

21. 물길 따라 둑길 따라 수북·봉산 습지로 가는 길

담양읍 중심부를 지나는 관방제림 길의 마지막 구간은 천변리까지이다. 이 구간을 벗어나 강쟁리를 거쳐 수북면 풍수리와 봉산면 대추리로 이어지는 양쪽 둑길에서는 툭 터진 물길과 함께 관방제림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봉산면과 마주한 수북면에서는 수북천 물길이 영산강 본류와 합수되는 습지가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아주 정겹고 아름답다. 이곳은 하천보호습지 구간은 아니지만, 고니가 날아드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드물게 귀한 노루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노루가 나타나도 이곳의 철새들은 도망하거나 하지 않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간다.

수북천은 풍수리 미산마을을 마지막으로 통과하여 담양읍에서 내려오는 영산강 상류 물줄기와 합류하여 흘러가다가 개동리와 봉산면 신학리를 사이에 두고 무정면에서 내려오는 오례천과 다시 합류한다. 그리고 다시 황금리와 봉산면 신학리, 와우리와 접해있는 지점에서 가사문학면에서부터 내려온 증암천 물줄기와 합류하여 대전면으로 흘러간다.

이 합수지들을 따라 봉산면 쪽으로 대추리, 신학리, 삼지리, 와우리가 강변에 면해 있고, 강 건너편 수북면 쪽으로 풍수리, 남산리, 개동리, 정중리, 황금리가 둑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마지막 합수지에서부터 담양하천습지 보호구역이 시작되는데, 이 습지길을 따라가면 대전면 강의리 조류관찰대를 지나 태목리 대나무습지로 이어진다.

합수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습지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마음이 따스해진다. 물길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하중도에서 왕버들 나무의 꿈이 멈춰 섰다가 이내 흘러 내를 이루고 숲을 이룬다. 바람 잘 날 없는 갈대의 꿈도 현재 진행 중이고, 그 사이로 논병아리가 자맥질하고 있다. 중간중간 하중도에 쌓인 퇴적물 사이로 생명이 들끓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억새와 갈대, 달뿌리풀로 우거진 습지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햇살을 받으며 잔잔히 흐르는 물 위로 빛나는 잔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물이 고요히 흐를 때 더욱 반짝인다는 것을 왜 잊고 살아가는 것일까. 살랑이는 바람결에 나뭇잎이 고요히 화답한다. 고요하지만 쉼 없는 움직임, 하얀 물억새 꽃물결도, 끝없이 밀려오는 수면의 잔물결과 청둥오리들의 자맥질도, 백로들의 날갯짓도, 하늘의 구름까지도 고요한 습지의 노래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둑길을 내려가 물속을 들여다보면 둑에 줄 지어선 나무들이 잔물결에 비쳐 어른거린다. 아련하게 비치는 물속의 나무들은 수채화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 잔물결이 점차 흐려지면서 나무들이 사라졌다가 다시 천천히 나타나곤 하는 건, 멀리서 청둥오리 한 마리가 조용히 자맥질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새 한 마리의 고요한 움직임으로 수면의 장면이 바뀌어 가지만, 수면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름다운 수채화로 채워진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든 풍경도 다 이렇게 사라지는 찰나 속에 있고, 행복이라는 것도 순간의 만족 속에 숨어있다. 수면 위의 청둥오리처럼 지나면 아무 일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슨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힘들게 살아가는 것일까.

석양이 들기 시작하면 습지의 영상은 노을빛으로 바뀐다. 지는 해의 얼굴이 수면에 비치면 윤슬이 빛나기 시작한다. 윤슬을 뚫고 몇 마리 물오리들이 자맥질해가고 하얀 백로들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뚫고 지나간다. 노을빛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자전거를 탄 라이더가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지나친다. 수면에 비친 해의 얼굴이 점점 환히 빛난다. 그리고 천천히 사라져간다. 천년의 하늘을 넘어온 구름이 짙어가는 노을 위에 전설처럼 펼쳐진다.

불멍이니 물멍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이지만 담양에서는 습지멍을 해보아야 한다. 습지로 가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사람 많은 단풍놀이도 좋지만, 한번쯤은 생명을 품어 온 습지의 시간을 홀로 찾아 가보자. 거기 한없이 고독해지는 시간 속에 비로소 풍요해지는 신비가 숨어있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