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9. 맑게 씻기는 소쇄원 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19. 맑게 씻기는 소쇄원 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10.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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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엔 물의 길, 소리의 길 열린다
가사문학면 지곡리 지석마을 소쇄원길 / 김정한 사진작가
가사문학면 지곡리 지석마을 소쇄원길 / 김정한 사진작가

 

19. 맑게 씻기는 소쇄원 길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 지석(支石)마을은 중종 20(1525년경)에 제주양씨에 의해 창촌되었다. 북쪽에는 고암산, 앞에는 무등산이 바라보이고, 마을 중심에 사적 제304호 소쇄원이 있다.

지석마을을 예전에는 지실에서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해서 바깥지실이라고도 불렀으며, ‘괸돌이라고도 불렀다. 양산보가 소쇄원의 오곡문과 애양단을 쌓을 때,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통과하는 지점에 자연석을 외줄로 괴어 담을 쌓았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원림이다. 양산보는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은거하기 위하여 별서정원을 꾸몄다. 소쇄원은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이곳에 놓여진 돌 하나와 조성된 건물 하나하나, 심어진 꽃 한 송이와 나무 한 그루 모두 선비의 마음과 추구하던 이상을 담은 것이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호가 소쇄옹이었기에 정원의 이름을 소쇄원이라 한 것으로,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지녔다. 주자가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현실을 도피하여 은둔한 행동 양식을 그대로 본받은 것이다.

 

소쇄원길은 비가 내리는 날 찾는 것이 좋다. 비가 내리는 소쇄원 입구 푸른 대나무숲으로 걸어 들 때의 청량함을 느낄 때 원림의 이름이 왜 소쇄원인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여기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면 금상첨화다. 잔잔하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불현듯 세상에서 자신을 가둔 양산보의 가슴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담양 출신 고재종 시인은 소쇄원 대숲에 드는 바람이 소쇄소쇄 무언가를 마구 씻는다고 표현했다. 맑고 깨끗하게 마구 씻어내는 바람이라니. 시 속의 구절처럼 반짝반짝 날아오르는 한 무리 오목눈이나, 내장까지 환한 몇 마리 빙어들만이 저 바람 소리를 알아들을 뿐일까. 대나무 숲에서는 향 없는 푸른 향이 가득하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중 대표적인 건축으로 꼽히는 소쇄원은 주거와의 관계에서 보면 하나의 후원이다. 1500평의 면적에 이르는 소쇄원길을 걸어보려면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쇄원의 공간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애양단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광풍각 및 계곡의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한 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원구역은 대봉대와 위아래 연지,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계원구역은 오곡문과 담 아래에 뚫린 계류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 옆에 곁들인 광풍각을 포함하고 있다. 내원구역은 제월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당과 오곡문 사이에 두 계단으로 된 매대가 있으며, 오곡문 옆의 다섯 바위는 자라 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뒤편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언덕이 자리하고 있다.

양산보는 당나라 이덕유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 고사를 따라서, 소쇄원을 남에게 팔지 말고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다행히도 그의 뜻대로 지금껏 보존되어오고 있다.

 

빗줄기에 물이 불면 오곡문을 통과한 물줄기가 몇 구비 돌아 광풍각 아래까지 쏟아져 내린다. 물의 길이 열리면 소리의 길도 열린다. 계곡의 물소리를 녹음하거나 처마에 내리는 빗줄기를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소쇄원길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빗길을 따라 뒷동산 소나무 숲까지 걸어 올라 봐야 한다. 먼 산언저리에서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시상이 절로 떠오를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대봉대 위쪽으로 한 마리 봉황처럼 비추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고독한 가슴을 달래었을 선비의 마음이 그려진다.

소쇄원에 비가 오면 시와 소리의 정원을 실감하게 된다. 잔잔하게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에는 맑게 씻기는 소쇄원길을 걸어보자.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