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7. 큰 골짜기 마을, 덕곡으로 가는 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17. 큰 골짜기 마을, 덕곡으로 가는 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9.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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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층층이 집 사이사이 휘감고 도는 돌담길

4부 산막이길
17. 큰 골짜기 마을, 덕곡으로 가는 길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 마을 길 / 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 마을 길 / 김정한 사진작가

 

화봉산과 서암산이 감싸고 있는 덕곡(德谷)마을은 통일신라 선덕왕 때(78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진주소씨가 터를 잡고 소촌(蘇村)으로 칭했다가 헌강왕 때(840년경) 비봉산과 서암산, 화봉산 자락으로 둘러싸인 큰 골짜기 마을이라 해서 덕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1640년경 김해김씨, 전주이씨, 추계추씨가 들어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덕곡마을의 형국에 대해서는 옛날 어느 도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니 부진타방(富振他方)이라하였으니, 즉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마을로 부귀가 멀리까지 떨치는 명당 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백운기처유인가(白雲起處有人家) 망덕청산재공적(望德靑山財供積) 옥녀탄금화음률(玉女彈琴和音律) 동락유수복도래(東樂有水福道來)’라 하여 마을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서쪽 봉우리를 망덕봉, 동쪽 봉우리를 옥녀봉이라 부르며, 옥녀봉과 강 옆의 정자나무 사이의 골짜기를 동락동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마을 강 건너편에 용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신다는 의미로 갈용재가 있다. 이 재를 넘어 정석리, 서흥리를 지나 순창 금과로 가는 길이 있으며, 마을 뒤편 재 넘어 들 이름을 막()골이라 부르고, 삽재를 넘으면 대덕이다. 갈용재는 무정면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 넘나드는 고갯길이었다. 아동들이 넘어서 봉안리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어른들은 순창과 옥과까지 넘나들며 시장을 오갔다. 그만큼 덕곡리는 담양에서도 막다른 산골짜기에 자리한 마을로 지금도 청정한 자연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청정 산골이지만 결코 아름다운 자연만 있는 마을은 아니다. 덕곡마을 앞의 자연보호 표석은 원래 금성산성을 축조할 때 양곡 수송과 장졸들의 통행 편익을 위하여 화봉산 중턱에 옮겨 다리로 사용되었다. 그 다리를 속칭 장시큰다리라 칭하였는데, 이 다리를 통하여 매년 6천석의 군량미가 화봉산과 서암산 사이에 있는 수양재를 넘어 금성산성에 운반되었다. 의미가 있는 다리이기에 마을 주민들의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었다. 그 뒤 금성산성은 고적이 되었고, 돌다리는 금성면과 순창과 옥과로 통하는 보행로로 사용되어오다가, 근래 들어 농지정리사업으로 새로운 길이 나자 주민들은 마을의 역사가 담긴 장시큰다리에 사용되었던 돌을 뜯어 옮겨 마을 앞 자연보호 표석으로 기념하게 되었다.

또한 마을 출신 의병장 추기엽(1879~1909)은 조선 왕궁을 지키는 친위대 장교로 근무했으나, 1907년 한일신협약 체결로 대한제국 주권이 위태로워지자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대에 가담했다. 호남창의대장으로 추대되어 1908년 대둔사를 근거지로 삼아 40여 차례 교전하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덕곡마을에 있는 의병장 추공기엽 기념비가 20041224일 현충 시설로 지정됐다.

 

유서 깊은 덕곡마을을 찾아가다 보면 멀리서부터 비봉산. 서암산, 화봉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산자락 따라 마을 길이 빙 둘러있다. 그리고 다섯 그루의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동구 밖 들판 정자 옆에 한 그루, 마을 회관 앞에 두 그루, 마을 안쪽에 두 그루로 300년 된 아름드리 고목들이다.

덕곡마을은 전형적인 담양 옛 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대숲으로 빙 둘러싸이고, 커다란 당산나무와 돌담길이 휘감고 있는 정겨운 마을이다. 집마다 감나무와 곳곳에 은사시나무도 이쁘게 서 있고, 언덕을 따라 층층이 집이 들어서서 조망을 헤치지 않고, 그 사이사이 돌담길이 이어져서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덕곡마을 길을 오를 때면 맨 먼저 마을 회관 앞의 당산나무와 인사를 나누고 대숲으로 빙 둘러싸인 뒷산 언덕길을 따라 반짝반짝 손바닥을 흔들어주는 은사시나무의 환영을 받으며 층층이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 맨 위쪽 감나무 언덕까지 올라가 보는 게 좋다.

한참 이어지는 마을 길의 풍경을 바라보며 끝까지 올라가다 보면 감나무 언덕이 펼쳐진다. 가을이면 감나무 언덕에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린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감이 익어도 마을에 감을 딸 사람이 없어서, 이제 감은 그냥 이다. 언덕 위에 빈집도 그림 속의 소품처럼 햇살을 받으며 단정히 앉아있다. 아무도 따러 오지 않아 꽃으로 남은 감나무처럼 상주하는 이 없이 길손에게 마루를 내어주고 있는 빈집에는 가끔 타지에서 사는 옛 주인의 자손들이 모인다. 올 때마다 청소하면서 옛날이야기도 하고, 마당에 상추랑 심어놨다가 뜯어가기도 한다. 어쩌다 시간이 맞아 주인들이 모이는 날 방문하게 되면 믹스커피 한잔을 얻어 마실 수도 있다.

전망 좋은 언덕 꼭대기에서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거기 별장처럼 자리한 시골집 마루에 앉아서 잠시 햇살을 받고 다리를 쉬다가, 내려올 때는 마을 안길로 내려오는 게 좋다. 덕곡마을 안길은 아직 정겨운 돌담이 남아있고, 특히나 우람한 느티 당산나무를 마을 가운데 두고 펼쳐지는 풍광이 유난히 아름답다.

소박하지만 자부심 강한 주민들과 인심이 남아 있는 곳, 담양다운 마을의 옛 풍경과 정취가 살아있는 큰 골짜기 마을, 덕곡으로 가는 길이 그리운 날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