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6. 은사시 반짝이는 안평리 마을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16. 은사시 반짝이는 안평리 마을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9.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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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시 언덕 길서 굽어본 들녘 참 아름답다

4부 산막이길
16. 은사시 반짝이는 안평리 마을길
무정면 안평리 마을길/김정한 사진작가
무정면 안평리 마을길/김정한 사진작가

 

16. 은사시 반짝이는 안평리 마을길

세상은 변하고 시대의 운세도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무정면이 담양에서도 외진 편에 속하지만, 삼한 시대에는 담양의 가장 오랜 이름인 술지현이 제일 먼저 생겨난 곳이다. 무정면 안평리 역시 유서가 깊은 마을이다.

안평리 신안동은 무정면의 중부에 있는 마을로 북서쪽으로는 고비산을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오례천 주변에 형성된 평지를 마주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산 능선의 말단에 고인돌 2기가 능선의 방향에 따라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청동기시대 것이다.

 

조선 세종 17(1435)경 화순 능주에 살았던 신안주씨 현욱이 이곳에 와서 산세를 둘러보니 비봉산 동쪽이 붕포란(鳳抱卵,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형국이라 편안하고 자손이 번성할 곳으로 보여 터를 잡고, 신안주씨 성을 따 신안동이라 하였다.

그 후 전주이씨가 마을 북쪽 덕곡리 방향에 창촌하여 평장동이라 불렀다. 대전면 평장리 평장동과 마찬가지로 무정면 안평리의 평장동도 고려시대 최고의 벼슬이었던 평장사가 나온 고을임을 그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안동, 평장동과 무정면의 동산리 일부를 합하여 신안과 평장의 이름을 따서 안평리라 부르게 되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근처 마을에서 안평마을로 밥 얻어먹으러 왔다는 말이 전할 만큼 지명대로 평안하게 지내온 마을이다.

 

이 마을이 평안한 이유는 마을을 둘러싼 산세가 균형 잡힌 명당인 때문인데, 마을 앞산인 개구리봉을 칠사골의 뱀이 노리고 있으나, 정석리의 황새봉이 지키고 있어 못 잡아먹고 있어서다. 거기에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도 기운이 세서 도둑이 감히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편안하니 앞산의 개구리봉은 북이 되고, 뒷산 형국이 장구에 해당돼 타고난 풍물꾼들이 아니 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에 띠밭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기생이 춤추는 형국이라고도 하고, 한량이 도포 자락을 넓게 날리며 춤추는 형국이라고도 한다. 신명의 지형대로 이월 초하룻날 마을 안 두레박샘 세 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염원하는 샘제를 지내왔으며, 이 샘제는 여수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3등을 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안평리 풍물놀이는 근방에서 신명을 알아줬다고 한다.

 

안평리의 남다른 마을 지세와 신명은 멀리 동구 밖에서부터 바라보기만 해도 티가 난다. 특히나 가을날 언덕 위의 노란 은사시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가슴 뛰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노란 은사시 손바닥들이 끝도 없이 반짝거리는데 아래서는 대나무 초록 물결이 넘실대는 장관이라니

30~40년 전에는 속성수로 장려되던 은사시나무는 가장 큰 사용처였던 나무젓가락의 수요가 줄어들고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심기를 중단한 상태라 이따금 산자락의 한구석에 남아 있을 뿐인데, 이곳 안평리에 가면 대나무숲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서 있는 키 큰 은사시나무 무리를 볼 수 있다.

 

1970~1980년대의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던 우리나라 산에는 속성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유럽이 원산지인 은백양 암나무에다 수원의 여기산 부근에서만 자생하는 재래종 수원사시나무의 수나무를 인공적으로 교배하여 새로운 나무를 탄생시켰다. 여러 번의 실제 적응시험에서 이태리포플러보다 오히려 산지에서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지구상에 처음 탄생한 나무는 아빠 이름인 수원사시나무에서 수원을 생략하고, 엄마 이름에서 따온 은을 붙여 은사시나무란 새로운 이름이 만들어졌다.

노란 은사시 잎새가 반짝이는 안평리의 가을날에는 동구에 수령 300년이 넘은 우람한 느티나무 당산도 샛노란 이파리를 끝없이 나풀거리고, 감나무 가지 사이를 나는 새들도 경쾌하게 가을의 하모니를 연주한다. 아직 거친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마을은 언덕을 따라 감나무며 소나무며 흙돌담이며 다정한 옛모습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골목길이 휘돌아 이어진다. 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어서들 오신 분들이다요? 어쩐 일로들 이 누추한 디까지 오셨는가요?”

아유 누추하기는요. 저렇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사시가 마을에 복을 다 가져다 나르고 있는 것 같은데요.”

허허허... 그라긴 하지라. 여그가 안평리인께라, 평안하게 사는 동네지라.”

나무가 좋고 마을 길이 정말 예쁘네요.”

 

이러다가 호박도 얻어오고, 감나무에 남은 감도 따오고, 운 좋으면 담금주도 한 잔 얻어먹고 온다. 마을 길을 한 바퀴 돌아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들녘의 모습도 동구 밖에서 바라보던 마을만큼이나 아름답다.

벌써 입추가 지났다. 노란 은사시가 반짝이는 안평마을 길에 가 봐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