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5. 기억이 투명해지는 비녀실 옛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15. 기억이 투명해지는 비녀실 옛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8.2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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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실 옛길에 서면 전설도 추억도 되살아난다
담양군 용면 용연리 비녀실 길 / 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용면 용연리 비녀실 길 / 김정한 사진작가

 

4부 산막이길

15. 기억이 투명해지는 비녀실 옛길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는 분통, 용평, 용동 세 개의 큰 마을이 있는데, 이 세 마을에 걸쳐 담양의 기원설화나 다름없는 지명군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먼저 세 마을의 지명유래를 살펴보면 용동마을은 일명 소년촌이라 불리는데 마을 옆에 소년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년 바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하나 깃들여 있다. 어느 날 한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앞 천변 느티나무 밑에서 소년 셋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고 같이 한판을 두었는데, 알고 보니 이 소년들은 이 근처의 산신들이었다. 이 가운데 소년 바위의 산신과 옥녀가 훗날 혼인 하여이곳에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소년 바위 건너편 오른쪽 골짜기가 비녀실이다. 비녀실을 지나서 도로 밑의 마을을 삼거리, 조금 지나면 왼쪽 마을이 대흥리였는데 지금은 삼거리와 대흥리를 합하여 용평마을이라 부른다.

그리고 맨 오른쪽 마을이 분통마을이다. 분통마을 입구 오른쪽 바위에 우뚝 세워진 정자 이름이 동화정인데, 동화정 자리의 바위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분갑 모양이라 분갑바위라고 불러왔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골짜기를 볼 수 있는데 오른쪽 골짜기가 통사골, 왼쪽 골짜기가 분재실이며, 양 골짜기 사이에 쭉 뻗어 나온 작은 봉우리가 옥녀봉이다. 통사골은 대장군의 통사영, 분재실은 옥녀의 화장품 분가루를 담은 계곡을 의미하며, 두 골짜기 이름을 따서 분통마을이라 부른다.

 

가마골 진입로를 따라 왼쪽을 보면 주름 무늬의 바위가 있는데, 이를 치마바위라 하고, 입구에서 2정도 들어가면 민가가 나오는데 민가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족두리 모양의 산봉우리가 있으니 그것이 쪽두봉이다. 가마골은 길게 늘어진 계곡 모양이 사람이 타고 다니는 가마 같다 하여 가마골이라 한다.

이와 같은 지명으로 인하여, 하늘의 선녀가 용을 타고 용연리에 내려와 옥녀단좌(분통마을의 옥녀봉)에서 분을 발라 화장을 하고, 비녀실(용평마을)의 비녀를 꼽고, 치마바위(대흥리)의 치마를 입고, 쪽두봉(가마골)의 족두리를 쓰고, 가마골의 가마를 타고, 소년 바위(용동마을)의 산신과 혼인을 하여, 아이를 많이 낳아 소년촌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렇게 용연리 혼인 전설은 여러 지명이 연결된 전설이라 지명군 전설이라 한다.

하늘의 선녀가 단장을 한 곳이라 그런지 용연리 일대 가마골 가는 길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중에서도 비녀실의 풍경은 지역민들만이 아는 특별한 숨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담양호가 생기면서 비녀실 계곡과 강변도 일부가 함께 수몰된 때문이다.

 

봄 햇살이 강변에 내리고 봄바람에 연둣빛 버드나무들이 흔들리는 4월의 비녀실은 절로 가슴이 설레는 풍경을 보여준다. 버드나무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은 얼마나 맑은지, 사르르 떨리면서 밀려오는 투명한 물결을 바라보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연푸른 잎새를 강변에 흩날리던 버들가지들이 모두 추락한 가을날의 비녀실 역시 쓸쓸한 아름다움이 가슴에 와닿기는 매한가지다. 비네산 임도를 따라가면 구부러진 산길에 낙엽이 수북수북 쌓여 정취가 그지없다. 아침 햇살에 나뭇가지들이 길을 가로지르는 긴 그림자를 늘이고, 그 위로 서리가 반사해내는 햇빛은 푸르게 반짝인다.

 

비녀실 계곡을 따라 길게 누운 비네산에는 수몰 후 임도가 새로 났다. 이 길은 추월산 앞 과녁바위산에서 중산으로 돌아 용치리 쪽으로 빠지는 길이고, 용마루 테크길로도 연결되는데, 임도 자체는 물론이고 임도에서 바라보는 비녀실 계곡의 풍광도 정취가 그만이다.

비네산 임도에서 바라보면 맞은편 도로가에 소년바위도 보이고, 수몰된 산성리로 통하는 옛길도 보인다. 옛 용면 초등학교가 있었던 노루목 마을로 가는 섶다리는 주민들의 추억을 안고 갈대숲 속에 숨어있다. 섶다리를 걸어보면 지난 세월이 비친다. 주름마저도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물, 지나간 세월은 쓸쓸하지만, 기억은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기억이 투명해지는 비녀실 옛길에 서면 오랜 전설도 지난 추억도 싱싱하게 되살아난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