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4. 까마득한 가마골 용소길 이야기
[담양 마을길이야기] 14. 까마득한 가마골 용소길 이야기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8.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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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산막길
추락한 용의 슬픔과 눈물로 굽이도는 용소길
담양군 용면 용연리 가마골 용소길 / 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용면 용연리 가마골 용소길 / 김정한 사진작가

 

제4부 산막길

담양의 지형적 특징은 남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까닭에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산막길을 형성하고 있다.

영산강 시원지 용소길을 시작으로 용마루길, 담양호 둘레길이 이미 담양의 관광명소로서 자리매김했으며, 비녀실길, 무정면의 은사시나무길과 감나무언덕길을 비롯한 수많은 산막길이 곳곳에 숨어있다.

숨은 비경을 간직한 산막길은 옛 산골 고향의 추억을 일깨워주고, 치유와 사색의 산책길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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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까마득한 가마골 용소길 이야기

담양군 용면 용연리는 용이 산다는 용소(龍沼)가 있어서 예부터 용소, 용못 또는 용연, 용동이라 불리던 곳이다. 지금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물과 공기이겠지만, 특히나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에는 물을 더욱 중시하였고, 그 물을 관장하던 신을 용으로 여겼다. 그래서 용()자가 들어간 고을은 반드시 물과 관련이 깊고 큰 못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쯤 되면 용면 용연리가 공식적인 영산강의 시원이면서 담양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은 지명만으로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용소는 용연리에서도 깊은 골짜기인 가마골 골짜기에 있다. 가마골의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유래가 전한다.

하늘의 옥녀가 신선과 혼인하기 위해 가마를 타고 들어온 곳이라 해서 가마골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용추사 불사를 위해 기와를 구웠던 가마가 있어서 가마골이라고 불렀다고도 하며,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 만큼 까마득하여 가마골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근방에 치마바위, 족두리봉, 비녀실, 분통바위, 가세바위, 소년바위 등이 있는 걸로 보아 여기를 색시가 시집갈 때 타고 가는 가마라 여겨 가마골이라고 불렀다는 말도 맞고,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도 실제로 남아 있는 만큼 앞의 이야기들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닌듯싶다. 물론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 만큼 깊은 골짜기인 것도 사실이다. 결국 가마골이라는 지명 속에는 오랜 전설과 역사적 사실과 지리적 조건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은 골짜기에 구불구불 이어지는 용소길이 있다.

 

용소는 담양이 자랑하는 10경 중 제1경이다. 그런데 용소에는 용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용이 승천하기로 되어있던 날, 때마침 새로 부임해온 원님이 가마골의 절경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이를 보는 바람에 부정을 타서, 용과 원님 둘 다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원님의 꿈에 용이 나타나 하루만 행차를 미뤄달라고 간청했지만, 원님은 청을 듣지 않고 기어이 구경을 나와서 천기를 엿본 죄로 함께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때 용이 고통스럽게 떨어져 죽으면서 용틀임한 자국이 폭포를 여러 개 만들었다고 하며, 용이 추락하면서 피를 많이 흘린 골짜기를 피재골이라고 부른다. 무릇 모든 아름다움의 극치는 비극에서 온다고 하였던가. 그래서 가마골은 추락한 용의 슬픔 때문에 가을마다 붉은 단풍이 그토록 곱게 물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왜 담양의 용은 추락해야만 했을까? 원님은 꼭 용의 말을 듣지 않고 승천을 막아야만 했을까? 그 원님은 용을 죽게 만든 나쁜 원님이었을까? 답은 그 원님이 자기 목숨을 바쳐 백성을 구한 원님이었다는 것이다.

옛말에 용이 승천하면 물이 마른다는 말이 있다. 영산강이 어떤 강인가? 호남의 젖줄 아닌가? 영산강의 시원을 지키는 담양의 용이 승천해버리면, 그리하여 영산강의 물이 말라버리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이 전설에는 용이 이 땅에서 백성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농민들의 여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현재 담양의 용은 부활해서 담양댐에 편안히 누워계신다.

 

가마골은 골짜기가 깊다 보니 6·25를 전후하여 참혹한 애환을 많이 남긴 격전지였다. 가마골에서는 노령병단, 카츄샤부대, 번개부대, 전북기포부대 등 네 개 병단 600명의 군인이 가마골, 분통골 일대의 공비 근거지를 토벌하기 위해 격전을 벌였다. 당시 가마골 군경이 1500명이었는데 절반이 죽고 절반이 다쳤다. 낮에는 인민군, 밤에는 반란군 세상이다 보니 급기야는 마을을 일부러 전소시키게 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를 가마골 주민들은 함께 도우면서 견뎌왔다. 그리하여 수려한 풍경의 고향마을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오고 있다. 추락한 용의 슬픔과 눈물로 굽이도는 용소길은 애절했던 전설과 민중의 애환을 안고 지금도 구절양장 이어지고 있다. 바람이 오랜 기억을 품고 마을 길을 간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