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1. 종대 거리의 전설
[담양 마을길이야기] 11. 종대 거리의 전설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7.0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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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대에 부딪쳐 변고 알려준 ‘까치전설’의 길
3부 읍내길
11. 종대 거리의 전설
담양읍 객사리 석당간/ 김정한 사진작가
담양읍 객사리 석당간/ 김정한 사진작가

 

11. 종대 거리의 전설

담양읍에서 순창행 도로를 따라 1쯤 가다 보면 도롯가에 우뚝 서 있는 보물 505호 석당간을 볼 수 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당간(幢竿)이란 이 깃발을 달아두는 대()를 말한다. 이 당간이 돌로 만들어져 석당간이라 하고, 꼭대기에 보륜 세 개가 달려 있어서 주민들은 석당간이 서 있는 이 길을 종대 거리, 혹은 짐대 거리라고 불러왔다. 현재 보륜은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석당간은 고려시대 당간 지주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로, 당간 옆에 세워진 비석에 따르면 큰바람이 불어 쓰러진 것을 조선 헌종 5(1839)에 현재의 모습대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당간 높이는 15m이며, 지주(支柱)의 높이는 2.5m이다.

속설에 의하면 담양의 지형이 배가 떠다니는 모양이라 풍수지리상 돛대가 필요해 당간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국가에서 간행한 관찬 지리지인 <여지도서 輿地圖書>(보유편補遺篇 <담양부읍지><담양부지도>(1872, 규장각 소장)에는 석당간 대신 석도(石棹)’ 라는 명칭이 기록돼 있으며, 석당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석탑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다.

 

관아의 동쪽 5리에 석도(石棹)가 있다. 높이는 백여척()이며 크기는 한 아름 남짓인데, 쇠사슬로 그 위에 관()을 잡아매어 놓았다. 50척 남짓의 석탑이 있다. 세속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처음 고을을 만들 때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추성(秋成 : 담양 옛 이름)의 땅 형세가 마치 배가 가는 모습처럼 생겼기 때문에, 석탑을 만들어 두어서 배를 정박시킨 것이라고 한다.’

- 국역문<여지도서> 49 -전라도 보유 2-, 전주대학교 고전국역총서1, 2009, 원문 11~12

 

즉 담양이 배의 형국을 하고 있어서 석당간은 배를 띄우는 돛대이자 배를 나아가게 젖는 노이기도 한, 전진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석탑은 배를 정박시키는 닻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 석탑이 바로 보물 506호 담양 남산리 오층 석탑이다. 배의 형국을 한 담양의 풍수지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조선 헌종 4(1838) 담양부사 홍기섭은 담양의 땅 모양이 배 모양이기 때문에 뱃사공이 있어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제작한 석인상을 천변리 마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이 석인상이 바로 전남 문화재자료 제21호 천변리 석인상이다.

이쯤 되니 2010년도 건축문화재분과 회의록에 의하면 당시 담양읍석당간으로 불리던 명칭을 담양 객사리 석도로 변경해달라는 요청안이 올라왔는데, 자문회의 검토 결과는 담양 석도(石棹)의 경우 바로 인근에 석탑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찰 유물로 생각되므로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불교 당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하여 정확한 고증 없이 그 형태나 세상에 전하는 풍수비보 설을 쫓아 기록한 것으로 판단 되며, 비록 고 기록에서 이들 유물에 대해서 당간이라고 기록한 것은 찾을 수 없지만, 불교의 유물로 생각되므로 속칭이나 세칭(世稱)의 의미보다는 원래의 의미인 당간으로 명명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현재 문화재철 공식 명칭은 담양 객사리 석당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공식 명칭이 어떻게 되었든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높이 솟아있는 저 물건이 그저 종대 혹은 짐대라고 불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물건의 꼭대기에서 종소리가 울리건 말건 아직도 이 거리의 이름은 종대 거리이다. 예전에 주민들이 장날 새벽이면 종대 거리서 만나자고 약속하고서 너도나도 대바구니 이고서 죽물 시장으로 함께 길을 가던 추억의 길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름마저 기억하는 원주민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지만 나는 오늘도 이 거리에만 가면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전설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느 날 풍경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서 나가보니 수백 마리 까치들이 종대에 머리를 부딪쳐서 떨어져 죽어 쌓여있더라는 것이여. 큰 난리가 날 줄 알고 모다들 피해서 목숨을 건졌당께. 울 동네서는 옛날부터 변고가 날라치면 까치들이 종대에 몸을 날려 소리로 알려 줬다여. 왜 그런지 알어? 우리가 농사 짐서 늘 까치밥을 남겨두잖어. 그 은혜를 갚느라고 그랬다여. 짐승들도 은혜를 안당께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