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10. 소통하는 공간 중심 관방제림 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10. 소통하는 공간 중심 관방제림 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6.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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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년 변함없이 공존의 공간으로 남아있으리라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관방제림 길/ 김정한 사진작가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관방제림 길/ 김정한 사진작가

 

3부 읍내길

10. 소통하는 공간 중심 관방제림 길

담양은 무슨 대단하고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고장은 결코 아니다. 큰 산도 없고 큰 바다를 면한 곳도 아니지만, 외려 이렇게 규모도 작고 특별난 구석이라곤 없는 잔잔함이 담양의 진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머리에 대단하고 새로운 것을 다시 집어넣는 일에 피곤하다. 휴식이 필요하다. 경쟁하고는 거리가 먼 작은 소로와 옛 담장과 나무들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 곳, 도시인들이 와도 생경하고 불편하지 않은 쉼터들이 있는 곳,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고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 작은 고장에서 그저 편히 걷고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담양이다.

 

특히나 담양 읍내길은 도시 이방인을 받아주는 공존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의 중심에 관방제림이 있다.

관방제림은 오랫동안 지속된 담양 지역민의 삶의 현장이다. 주민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문화유산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단연 1위를 한 곳이 바로 관방제림이다. 관방제림 길을 산책할 때면 지역 어르신들이 관방제림 노거수 아래 평상과 벤치를 찾아 빼곡히 앉아계시는 걸 볼 수 있다. 군청이 가깝다 보니 점심 후에는 군청 직원들도 관방제림 길을 산책한다. 그 사이를 수 없는 관광객들이 걷고 또 걷는다. 이렇게 관광지에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자연 속의 휴식을 즐기는 풍경도 드물 것이다.

 

현재의 담양 관방제는 담양읍 남산리 동정자 마을로부터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까지 길이 6에 이르는 곳이지만, 관방제가 유명한 이유는 남산리에서 시작해서 천변리까지 약 2에 걸쳐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풍치림을 관방제림이라고 부르는데 면적 49228에 추정수령 400년에 달하는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동안 많은 태풍과 홍수가 있었지만 건재한 숲은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움이 더해 1991112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산림청이 주최한 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수종은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으로 약 420그루가 자라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 안에는 180여 그루의 오래되고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다.

 

관방제림에는 자연 풍광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전한다.

관방제림은 1648(조선 인조 256)에 성이성이라는 부사(재임기간 1648. 7~1650.1)가 처음 조성했다고 기록된다. 성이성은 경북 봉하 출신으로, 담양에 부임해 왔을 때 담양읍 중심부를 지나는 담양천에 수해가 나서 주민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천변에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때 심은 나무들의 수령이 400년 이상이 되는 나무들로 현재 관방제림 나무들의 주류를 이룬다.

근래에는 최초로 관방제림을 조성한 성이성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관방제림의 나무는 성이성 부사가 성춘향을 그리워하며 심은 나무라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더해지고 있다. 성이성은 남원 부사로 부임한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어린 시절(1608~1611)을 남원에서 보냈으며, 이 시기에 춘향을 만나 지극한 사랑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성이성 부사의 행적을 기록한 일지를 보면 조선 인조 25(16467) 남원 광한루를 방문하자 늙은 기생 여진(춘향의 )이 맞이하였으며, 소년 시절을 회상하고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성이성이 과거시험 합격 후 암행어사가 돼 어사 출두 전 지은 한시는 춘향전을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성이성은 암행어사를 4번이나 역임했으며, 담양부사, 춘추관 편수관, 진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1664년 눈을 감은 뒤 청백리에 선정됐다. 이렇듯 관방제림은 성이성 부사의 깨끗한 생애에 깃든 순수한 사랑과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녹아 있는 곳이다.

 

조선 최고의 로맨티스트 성이성이 수축한 제방은 200여년이 흘러 1854년 담양부사 황종림이 보수를 했다. 관방제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황종림이 관비(官費)로 연인원 3만명을 동원해 이곳을 다듬은 뒤의 일이다. 관에서 주도해서 쌓았다고 해서 관방제라 했으며, 이곳의 숲은 관방제림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혜안을 가지고 선정을 베푼 관리들 덕분에 관방제림은 두고두고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이야기를 선사해주고 있다.

관방제림은 여름철 피서지로서 각광받고 있으며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사랑이 머문 관광제림은 이후로도 수 백 년, 아니 수 천 년을 이 자리에서 변함없이 주민들과 함께하면서 도시 이방인을 받아주는 공존의 공간으로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다음호에 계속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