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이야기] 9. 사색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담양 마을길이야기] 9. 사색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6.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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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걷는 플라타너스길사색에 잠겨봐요

3부 읍내길

9. 사색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담양읍 향교리 플라타너스 가로수길/김정한 사진작가
담양읍 향교리 플라타너스 가로수길/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 앞 분수 광장 뒤쪽으로 외지인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명품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숨어있다. 300미터밖에 안 되는 길이지만, 시적 감성에 젖기 충분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플라타너스는 높게 자라는 수직적 특성으로 인해 꿈을 가진 존재로 상징되며, 빨리 자라 그늘을 만드는 속성으로 인해 헌신적인 사랑을 가진 존재로 상징된다. 또한 가로수가 돼 인간의 고독함을 함께 나누는 사색의 동반자 역할을 맡아온 나무이다.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서정시인 김현승(1913~1975)은 이러한 플라타너스의 상징성을 주제로 한 시를 남겨 국민시로 널리 애송된 바 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중략>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담양군에서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에 별빛 조명 연출과 스토리가 담긴 로고젝터를 설치했다. 별이 쏟아지는 길을 음악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낭만적인 밤 풍경이 연출된다. 김현승 시인이 노래했던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 재현된 것이다.

분수 광장 옆에 설치된 초승달 모양 조명과 함께 명품 플라타너스 별빛달빛길이 열린다. 아름다운 자연에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해 사람과 자연이 상생 공존해온 담양만의 전통을 잘 살린 이곳은 아름다운 별과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플라타너스는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생겨났다고 한다. 중생대 백악기층에서 플라타너스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서아시아에서 지중해 지방에 이르는 지역(발칸반도와 히말라야 지역)이 원산지로 플라타너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의 ‘platy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넓다는 뜻이다. 그래서 플라타너스라는 이름은 잎이 넓은 나무라는 의미다.

손바닥처럼 생긴 넓은 잎은 어긋나며 잎몸은 깊게 5~7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에는 큰 톱니가 있다. 이 투박하고 넓은 잎사귀는 부채처럼 한여름의 땡볕을 막고, 도시의 매연을 거르는 손이다.

 

플라타너스는 나라마다 넓은 잎, 동그란 열매, 껍질 모양의 특성에 주목한 바가 다르고, 그 특성에 맞춰 나무의 이름이 달리 생겨난 사연이 재미있다. 일본에서는 플라타너스가 스즈카케노키로 불리는데, 동그란 열매가 수도승이 입던 가사(스즈카케, スズカケ)에 달린 방울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열매가 방울 같다고 해서 방울나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플라타너스의 공식적인 이름은 버즘나무이다. 늦가을이면 껍질이 갈색으로 갈라져 큼지막한 비늘처럼 떨어지고, 떨어진 자국은 회갈색으로 얼룩져 남아서 매끄러운 껍질 표면에 버즘 모양을 만든다. 그래서 이러한 나무껍질의 모습에 주목하여 버즘나무가 되었다.

 

요즘에는 도심에 심은 플라타너스를 교체하는 지자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예전에는 플라타너스가 어느 도심마다 가장 흔한 가로수였다. 플라타너스의 꽃말은 재능으로 당신은 그 어떤 재능보다 더 값진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힘든 시기를 꿋꿋이 이겨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플라타너스에게 사람들은 모여들고, 마음의 의지를 삼곤 했다. 특히 학교 운동장마다 서 있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는 중년들의 가슴에 학창 시절 추억의 나무로 자리하고 있다.

 

여름날 플라타너스가 손바닥 모양의 넓고 푸른 잎을 내밀어 만들어주는 그늘은 참으로 다정하다. 넓은 손바닥을 흔들며 반겨주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에서는 나도 따라서 손바닥을 펼쳐보게 된다. 푸른 기억들이 돋아나는 나무의 그늘에 서면 오늘의 근심은 접히고, 작고 아름다운 행복이 열린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고, 수북수북 쌓이는 낙엽은 더 아름답다. 가을날 오후 햇살이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비쳐 보이는 풍경은 장관이다.

겨울은 플라타너스의 진정함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껍질마저 벗겨진 몸통에 얼룩덜룩 버즘처럼 보이는 무늬는 군복을 입은 듯 강인하다. 세월의 신산함이 얼룩진 나무의 맨몸 앞에서는 고독과 사색에 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은 혼자서 걷는 사색의 길로 제격이다. 앞서 소개한 김현승의 시에서도 플라타너스는 삶에 대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나누는 동반자로 표현됐다. 다정하고도 강인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보자.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