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 길이야기] 6. 세월 따라 흘러가는 용운마을길
[담양 마을 길이야기] 6. 세월 따라 흘러가는 용운마을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5.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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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 전설이 돼 가는 마을 길

 

창평면 용수리 용운마을길/김정한 사진작가
창평면 용수리 용운마을길/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창평면 용수리 용운마을은 약 300여년 전 월봉산의 한 맥인 구봉산을 주봉으로 그 아래 마을이 형성됐으며, 마을 앞으로는 용연천이 흐르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이 비룡사우(飛龍瀉雨)’형이라 하여 이름을 용운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용운마을 돌담과 나무와 사람은 세월을 함께 해왔다. 마을회관 앞 버드나무는 유난히 껍질이 거칠고 밑동도 굵다.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는 시집왔을 때 이 버드나무가 손가락만 했다고 기억하신다. 그러니 버드나무도 백 살쯤 되었을 터이다. 또한 할머니가 시집오고 나서부터 마을 담벼락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돌담을 허물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해서 참 이쁘다.

 

주름진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고는 씩씩하게 짐 바구니를 밀어 언덕길을 오르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언덕으로 사라져간다. 할머니가 머물다 간 공터에는 가을 햇살이 그린 묵죽 같은 긴 나무 그림자가 펼쳐진다. 돌담길은 휘도는 언덕으로 이어지고, 월봉산에서 나리는 영산강 물줄기는 마을 중심을 흘러내린다. 들에서는 탈곡을 끝낸 벼들이 편히 눕고, 논둑의 억새들은 바람 따라 일어난다.

 

다리를 건너서 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논둑에 매실나무, 개울가에는 밤나무·감나무, 용운저수지 아래는 커다란 뽕나무가 서 있고, 소나무와 편백나무 향이 싱그러운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들 사이로 어떤 새는 네 박자로 울고, 어떤 새는 빗, , , 비트로 운다. 이 길이 상월정 가는 숲길이다.

 

용수리 용운마을 하면 군민이 뽑은 담양 10정자 중의 하나인 상월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상월정은 창평지역 정자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원래 고려 경종 1(976)때 창건된 대자암 절터이다. 그래서인지 정자라기보다는 절의 느낌을 주는 분위기이다. 그 후 세조 3년 언양인 추제 김자수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대자암 터에 상월정을 창건했다가 손자사위인 성풍이씨 덕봉 이경에게 이를 양도했다. 그 후 이경은 후손이 끊기자 사위인 학봉 고인후에게 다시 이를 양도해 줌으로써, ··3성과 인연을 지니게 된 것이다.

 

창평하면 인물의 고장이라 일컬어진다.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창평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월정에서 발원된 고고한 정신이 창흥의숙을 거쳐 창평초등학교로 맥이 이어지는 학문적 근원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곳이 창흥의숙으로 쓰인 연대는 고정주가 을사조약 이후 즉각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1905년부터 1908년 사이로 여겨진다. 여기서 영어·수학에 능통한 이표라는 선생으로부터 가인 김병로(18881964), 고하 송진우(18891945), 인촌 김성수(18911955) 등이 배웠다.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쳤기에 창평영학숙이라고도 한다. 상월정에서 싹이 튼 창평 사람들의 학문적 기반은 창흥의숙을 거쳐 창평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상월정이 유명한 정자이다 보니 신기한 전설이 몇 가지 전해지고 있다.

먼저 유명한 고양이 일화가 있다. 청년인 강화최씨가 창흥의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책을 빼내어 밖으로 나갔다. 청년이 책을 물고 나가는 고양이를 잡으려고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집이 무너져버렸다. 청년은 그때야 고양이가 왜 책을 물고 밖으로 나갔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후대에 이르기를 고양이를 절대 죽여서는 안된다고 일렀다. 그 까닭에 강화최씨는 지금도 고양이를 죽이는 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또한 창흥의숙 옆에는 산지기 할머니가 살고 있었으며 공부하는 이들을 정성으로 보살폈는데, 할머니는 공부하던 사람이 시험을 보러 가면 전날 꿈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꿈에 집채만 한 불덩이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또 방을 한 바퀴 돌고 나가면 합격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고 전한다.

 

전설이 이어지는 상월정을 품은 용운마을은 세월 따라 순하게 변해왔다.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마을의 길도 조금씩 전설이 되어간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