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 길이야기] 5. 시간이 느리게 가는 옛담장길(창평면 삼지천마을)
[담양 마을 길이야기] 5. 시간이 느리게 가는 옛담장길(창평면 삼지천마을)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5.0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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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대로 살아가는 삼지천마을에 가면
옛 담장길 곳곳에는 한옥 카페와 민박이 있고
담쟁이 담장과 기와 두른 고택들 조화 이루고…

자연과 교감하고픈 여행자마다 천천히 걷는다
슬로시티 담장길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사유하며 걸어보자

<담양 마을 길이야기>

2부 달팽이길

 

창평면 삼천리 삼지천마을 옛담장길/김정한 사진작가
창평면 삼천리 삼지천마을 옛담장길/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삼지천마을은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마을이다.

슬로시티란 느리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 즉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며 느림의 미학대로 살아가는 곳을 말한다. 담양의 슬로시티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느림 운동이 아닌 삶의 방향에 관한 것이다.

시간과 정성이 깃든 먹거리로 좀 더 건강해지고, 느리게 사유하며 걸어감으로써, 마음이 한결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이 소박한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달팽이처럼 더 느리게 깊이 내면과 마주하며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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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간이 느리게 가는 옛담장길(창평면 삼천리 삼지천마을 옛담장길)

삼천리는 세 갈래의 물길이 흘러 삼지내 또는 삼지천, 삼천이라 불렸다. 삼천리는 운암리의 운암천이 창평천을 이루며 삼천리를 지나고, 용수리의 수곡천과 용운천 두 물줄기가 삼천천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삼천리의 형국은 주산인 월봉산으로부터 절골이 있는 녹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봉우리가 병풍을 쳐놓고 공손히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이 줄기는 또한 만덕산의 혈맥에도 속한다. 만덕산 줄기로부터 삼천리까지 바위가 일자로 이어져 산맥바위라 불렀다. 만덕산은 만인의 덕을 입는 산이며 그 산맥의 바위가 삼지천에 이어지고 있어 덕바위라 불러왔다. 그 바위 속에는 용으로 올라가기 직전의 뱀인 전이라는 전설의 물고기가 살고 있어서, 그 전이 삼천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오래도록 믿어왔다.

 

전설의 힘이란 지역민에게 삶의 위로이며, 위난 앞에선 용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삼천리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내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삼지천의 부자들은 개인 재산을 털어서라도 일본인들과 겨루어 상권을 지켰고, 창평면의 주민들 또한 합심해 우리 자본을 지켜내고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부인들은 담밖에 일본인의 게다짝 소리가 들리면 부엌의 설거지물이나 뜨거운 물을 담 너머로 뿌려 일본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일본 상회의 물건은 사지 않고, 밤에 가서 때려 부숴버리니, 창평 주재소에서 근무하던 순사들이 밤이면 무서워서 광주에 가서 자고 낮에만 근무할 정도로 반일 정신이 뚜렷했다. 그리하여 일제 강점기 때에도 창평은 일본인들의 힘에 굴복하지 않은 땅으로 후대에 창평 주민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삼지천은 이처럼 피땀으로 지킨 근대역사가 이뤄진 곳이 됐으며, 항일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이다.

 

삼천리 입구 창평현문을 들어서면 남극루 2층 정자가 보이고, 면사무소조차 창평현청이라는 간판을 내건 한옥 기와 건물에 공원처럼 너른 정원을 품고 있다. 담양에 돌담길이 더러 남아 있지만, 삼지천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규모도 크고, 대부분 가옥도 기와를 두른 고택들이다. 맑은 물을 담은 도랑이 마을 길 구석구석을 휘감아 흐르고, 도랑을 따라 잘 가꿔진 화단에는 봄이면 수선화가, 여름엔 채송화가 만발하고, 가을이면 구절초 꽃잎들이 하얀 웃음으로 반겨준다.

 

슬로시티란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며 느림의 미학대로 살아가는 곳이다. 여기 삼지천마을은 한과, 쌀엿, 전통 장류 등 시간과 정성을 들인 건강한 먹거리가 전해오고, 전통 정원을 품은 고택들과 인문학적 사유의 전통이 내려오고 있기에 유네스코 슬로시티 위원회에서 인정해 지정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골짜기마다 농토를 숨기고 사람을 들여온 담양의 자연과, 그 자연에 최소한의 인공만을 가미해 차경의 미를 추구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삶을 이뤄온 담양 전체가 슬로시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삼지천 옛 담장길 곳곳에는 한옥 카페와 민박이 있고, 꽃과 나무가 담장과 조화를 이뤄 자연과 교감하고픈 여행자들이 쉬기 충분하다. 천천히 돌담을 기어올랐을 담쟁이와 인동초 넝쿨, 기와 위에 매달린 조롱박, 대문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집들의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여행객들은 천천히 걷는다.

 

매화 나무집, 겁나 많은 석류나무집, 아궁이가 이쁜 엿집, 나무를 사랑하는 집, 돌탑을 사랑하는 집 등 각기 개성을 지닌 집들의 이름이 정겹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이란 문패를 내건 할머니·할아버지 내외는 아예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길손을 맞는다. 삼지천 옛 담장길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