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 이야기] 4. 가슴으로 건너는 다리걸(월산면 오성리 다리길)
[담양 마을길 이야기] 4. 가슴으로 건너는 다리걸(월산면 오성리 다리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4.26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녹슨 다리길…사계절 여러 번 다녀갔겠다

오성·군수동·내동마을 앞 월산천 둑길 따라
다섯 장군이 나온다는 오성리 걷다 보면
난간 한쪽이 떨어진 녹슨 다리가 발길 붙잡는다

사연많은 수 세월 가슴으로 건넌 오성 다리길
쓸쓸하게 녹슬어가는 모습 오래 남아 있기를…

 

월산면 오성리 내동마을/김정한 사진작가
월산면 오성리 내동마을/김정한 사진작가

 

담양군 월산면 오성리에는 오성마을과 군수동, 내동, 세 마을이 있다. 오성리는 오장산의 정기를 받아 별 다섯 개의 장군이나, 다섯 명의 장군이 나올 수 있는 명당이 나올 곳이라는 이름이다.

그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절에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일본인들이 오장골에서 용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잘라 혈이 끊겨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때 이 고개에서 피가 많이 흘러 나와 혈류고개라고 불렀다고 하며, 그것이 변해서 지금은 서리고개라고 부른다.

오성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14일이면 마을 뒷산 아래 위치한 우물에서 샘제를 정성스럽게 지내왔다. 과거 마을의 식수원이었던 신령한 샘은 주민들을 지켜주기도 했다. 어느 땐가는 샘이 유난히 시끄럽게 울던 적이 있었다. 웅웅 소리를 내며 우물이 울자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곧바로 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후 왜군들이 마을에 쳐들어왔고, 샘 덕분에 다행히 화를 모면했다고 한다.

군수동 마을은 일제 때 오장산 혈만 자르지 않았으면 지명을 따라 군수가 나왔을 곳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을 형국이 소의 여물 주는 구시통 모양이라 구시동라 부르던 것을 한자식으로 표기하다 보니 군수동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담양군에 내동(內洞)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담양읍의 백동리 내동(삼거리), 삼만리 내동(고대실), 대전면 병풍리 내동, 무정면 내동(내당), 월산면 오성리 내동 등 다섯 마을 정도가 있다. 이 가운데 오성리 내동마을은 동쪽은 오성마을, 남쪽은 월산마을, 서쪽은 광덕마을, 북쪽은 월천마을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안 내()자로 딱 떨어진 마을이다.

내동은 좌·우 산이 오목하게 감싸고 있고 동서로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 마을로, 시냇물이 서쪽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기름진 옥토에 물이 풍족하니, 농촌으로는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져 왔다. 마을로 내려오는 물길은 소쿨샘에서 시작되는데, 소쿠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에는 따뜻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여름에는 손을 못 담글 정도로 시원하며, 비가 많이 내리거나 가물어도 일정한 양이 나온다고 한다. 주민들이 그 물을 떠다가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잘 이뤄졌다.

오성리의 이 세 마을 앞에 다섯 장군이 나올만한 명산인 오장산이 있어서 많은 지관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오장산이 천주교 공원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장례 장()자 오장산이 돼버렸다는 말도 하지만, 고 이태석 신부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묻히고, 그들을 참배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은 인물만을 기억하지만 수없는 장삼이사들의 몸을 안아준 곳이 오장산의 품이다. 나 역시도 명절마다 부모님이 있는 이곳을 찾곤 한다. 오장산 공원묘지에 올라 이곳에 누우신 부모님 곁에서 건너편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아직 벗지 못하고 있는 내 몸 하나가 퍽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걸으면 유난히 아름다운 길이 있다.

공원묘지에서 내려오면 십자가처럼 전신주가 펼쳐진 마을 길이 있고, 농로가 이어지고, 월산천 맑은 물길 따라 둑길이 함께 이어진다. 물억새와 고마리가 우거진 둑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억새와 대숲이 춤추며 반겨주곤 한다.

마을마다 맑은 샘이 있고, 샘제를 정성스레 모시던 오성리 주민들의 마음이 오래 이 물길을 따라 이어졌을 것이다. 둑길 아래서는 소금쟁이가 활을 그리고, 푸른 하늘과 구름이 선명하게 비쳐 든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자갈까지 환히 보이는 물의 얼굴, 곁에서 고마리가 하얀 꽃무리를 쏟아내며 웃는다.

월산천 둑길을 따라 여러 개의 다리가 있지만, 난간 한쪽이 떨어진 녹슨 다리는 유난히 발길을 붙잡는다. 억새가 시들고 있는 오성리 다리걸, 쓸쓸해서 아름다운 길에서 저녁을 재촉하는 등 굽은 할머니의 실루엣이 보인다. 깊어가는 마음이 우두커니 남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고독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날은 홀로 월산천 둑길을 걷자. 오성리 다리걸에서 멍때리고 있어 보자. 오래된 오성리 다리는 가슴으로 건넌다. 이 다리 위에서 사연 많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여러 번 다녀갔다. 부디 쓸쓸하게 녹슬어가는 이 모습 그대로 오래 남아 있기를.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