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 이야기] 2. 흙돌담이 아름다운 길(월산면 월신평길)
[담양 마을길 이야기] 2. 흙돌담이 아름다운 길(월산면 월신평길)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4.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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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 듯 굽이돌며 이어지는 달뫼 흙돌담길
월산면 월평리 월신평길/사진작가 김정한
월산면 월평리 월신평길/사진작가 김정한

 

<1부 달뫼길>

달뫼는 월산의 우리말이다. 그래서 월산면의 옛길들을 통칭 달뫼길로 부르기로 한다. 이름처럼 이쁜 길을 마을마다 꼭꼭 숨기고 있는 월산면은 산으로 빙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월산천 물줄기 따라 습지가 이어지고 세월 묵은 다리들이 그림처럼 놓인 곳, 꾸밈없는 옛 모습을 간직한 흙돌담길 담장들이 순하게 열어주는 달뫼길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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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흙돌담이 아름다운 길(월산면 월평리 월신평길)

 

고향 마을 길의 정감 있는 풍경을 떠올리자면 뭐니 뭐니 해도 동구를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 당산나무나 정자나무를 지나 무너질 듯 굽이돌며 이어지는 흙돌담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흙돌담은 흙과 돌을 섞어 견고성을 높인 형태의 담장이다. 원시적이고 허술해 보이지만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 담장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을 간직한 채 곳곳에 숨어있다.

 

흙돌담이 있는 시골 마을 길을 만나게 되면 걸음이 느려진다.

괜찮아. 여기서는 괜찮아. 저 길을 맘대로 해찰하면서 느리게 걸어봐.’

학창 생활과 사회생활 내내 오랜 경쟁에 시달려온 자신을 향해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는 마을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마을 길이 있으니 바로 월산면 월평리 월신평길이다. 월평리는 큰 산 밑의 들에 마을이 이뤄져 월평이라 했다.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의 지역이었는데, 일제 강점인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산면 월평리에 속하게 됐다.

높이 솟은 국수봉과 도마산 아래 월평·신평·왕산 세 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월평마을에서 신평마을에 이르는 월신평길에 흙돌담 옛길이, 왕산마을에는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내리며 마을 앞 들판을 모두 적셔 뱀내라 불린다는 중월천이 흐르고 있다.

 

지난 가을에 뒷산을 둘러치고 자리 잡은 담양의 월산면 시골 마을 월산면 월평리 월평마을 길을 찾았다. 대나무의 고장답게 뒷산 아래 울창한 대숲이 펼쳐있고, 동구에서도 대나무가 푸른 몸짓으로 맞이해줬다. 마을 길은 소박한 흙돌담으로 이어지고, 여러 번 덧댄 기와가 담장 위에 삐뚤빼뚤 얹혀 있었다. 파란 양철 지붕과 슬레이트, 기와지붕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골목길이었다.

 

울퉁불퉁한 흙돌담을 쓰다듬어 보았다. 담장에 경사지는 햇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돌담에 이끼들은 몇백 년을 살아왔을까. 담장을 넘는 덩굴손에 점령당한 기와는 나날이 더 삐뚤해지겠지. 뭐 좀 그러면 어때.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주는 행복이 담장에 얹히어 손끝을 타고 조용히 스며들었다.

 

장석이 달린 나무 대문이 얌전하게 입술을 닫고 있는 옛집 앞에서 잠금장치도 없이 서 있는 자전거. 도로 어디나 세워놓아도 누구 자전거인지 다 알아보고, 아무도 가져가지 않던 오래전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가 생각났다. 이런 풍경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골목길을 걸어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새우등처럼 굽은 몸이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 뉘여?” “마을 길이 이뻐서 구경 중이에요,” “요거이 뭐가 이쁜가?” “, 흙돌담이 아주 예뻐요, 할머니처럼요.” “호랭이 물어가네. 요놈의 돌담이나 내나 요로코롬 다 폭삭 삭아부렀제.”

할머니가 지팡이로 돌담을 가리키며 정색을 하셨다. “아직도 이뻐요, 할머니도 참 고우시고요. 젊어서 아주 미인이셨겠어요.” “그려? 내도 뭐 왕년엔 썩 괘않혔제.” 주름진 얼굴로 할머니가 크게 웃으셨다.

 

, 할머니 여기 마을에 당산나무도 있어요?” “하모. 저그 뒷길 따라 가보먼 당산 있어. 우리 동네 사람덜 다 거 가서 제 지냈제.” “지금도 당산제 지내세요?” “아니, 코로나 땜시 못 지내. 글고 풍물 칠 젊은 아그들이 어디 있간디. 인자는 다 글러부렀어.” “, 그렇구나. 아쉽네요.”

 

마을 뒷길로 나가니 논에는 벼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흰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억새가 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춤추는 억새의 신명에 취해 논둑길을 걸었다. 산 밑에는 무성한 대숲. 그 위로 펼쳐진 하늘도 유난히 푸르고, 길 끝에서 당산나무를 만났다.

길의 끝은 끝이 아니었다. 옆 마을 신평마을이 시작되는 길이었다. 논둑길 옆으로 흐르는 개울 탓인지 당산나무 등걸에 이끼가 유독 짙푸르렀다. 이 당산 아래서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 함께 모여서 신명 나게 풍물을 치며 풍년을 기원했을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흙돌담 골목길이 이어졌다. 감나무가 참 많았다. 시골 마을 흘돌담을 배경으로 주렁주렁 열린 감들은 가을의 꽃이었다. 감을 따서 가을을 한 입 베어 물고, 참 이쁜 마을 길을 걸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