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속 곤충여행⑲ 어둠의 추적자, 멋쟁이딱정벌레
대숲속 곤충여행⑲ 어둠의 추적자, 멋쟁이딱정벌레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10.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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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딱정벌레 표본,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멋쟁이딱정벌레 표본,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어둠의 추적자, 멋쟁이딱정벌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가 뿌리로 번식하는 줄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는 정확하게 땅속줄기(지하경, 地下莖)로 번식한다. 땅속줄기에 생긴 눈이 올라와 죽순이 되고 자라면 새로운 대가 된다. 물론 극히 드물게 씨앗으로 번식하기도 한다. 대의 땅속줄기는 땅속 깊이 수직으로 자라는 직근성이 아니고, 지표면 50이내의 표토에서 옆으로만 뻗는 측근성이다. 대의 뿌리는 이 땅속줄기에 잔털처럼 짧게 붙어서 땅속의 물과 무기양분을 흡수해 대의 줄기와 잎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죽순이 크고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으려면 양분이 풍부한 퇴비가 제공돼야 한다.

대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다. 상록수이기 때문에 댓잎은 낙엽이 지지 않고 평생 가지에 붙어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매년 새순이 나오면 오래된 잎을 땅에 떨어뜨려 땅속줄기와 뿌리를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썩어서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자신 몸의 일부인 잎사귀를 떨어뜨려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생명 순환의 지혜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본지의 필자 칼럼 11회분(630일 출간) ‘장수풍뎅이 편대의 성분 분석 결과 대에는 다양한 영양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는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댓잎 역시 장수풍뎅이뿐만 아니라 대나무 자신에게도 곰팡이와 작은 미생물 등 분해자의 도움으로 자양분이 돼 대숲이라는 큰 터전을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생산자인 대나무가 떨어뜨린 댓잎 낙엽 밑에서 수많은 작은 지표(地表)생물들이 저마다의 방식대로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이 하위소비자를 먹이로 삼고 대나무숲 속 먹이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곤충이 있다.

바로 어둠의 추적자, 멋쟁이딱정벌레(Coptolabrus<Damaster> jankowskii jankowskii). 딱정벌레목() 딱정벌레과() 중에서 몸길이가 3~4로 딱정벌레과 중에서 기골이 장대한 대형 종이면서도 몸이 댓잎처럼 날씬한 팔등신이다. 몸의 색깔은 지역에 따라 개체변이가 심하지만, 앞가슴등판이 적동색, 흑녹색의 딱지날개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개체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딱지날개의 가장자리를 반짝이는 청동색으로 가느다란 띠를 둘러 한껏 멋스럽게 치장해 이름에 멋쟁이가 붙여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즘 곤충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곤충계의 선남선녀 아이돌이다.

일부 곤충연구가들이 이 곤충의 지역명(local name)인 한국명을 학명의 종소명인 jankowskii를 그대로 발음하여 양코스키딱정벌레양코브스키딱정벌레로 불렸으나 지금은 멋쟁이딱정벌레로 명명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 종은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색깔과 크기의 지역 변이에 따라 학자들이 멋쟁이딱정벌레 이름 앞에 제주-, 지리-, 진도-, 부산-, 강원-, 거제- 등을 붙여 아종(亞種)으로 부르고 있다. 오랜 지리적 격리에 따른 교미기 변형에 따른 분화와 분자생물학적 연구, 개체 간 교잡의 여부 등을 통해 정확하게 동정하고 분류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멋쟁이딱정벌레는 앞날개를 펼칠 수 없고 막질인 뒷날개가 거의 퇴화돼 비행 기능을 상실했다. 6개의 다리는 지면 가까이 옆으로 넓게 벌려진 보행 자세로, 걷는다기보다는 기어 다닌다는 표현이 옳다. 사냥을 할 때에는 길앞잡이처럼 뛰고, 달리고, 나는 곤충이 아니다. 오로지 땅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기다란 더듬이와 입술수염, 입 주변의 잔털 등으로 지표면의 먹잇감을 감지해 찾아낸다. 특히 입에 있는 갈고리 모양의 두 개의 강한 턱은 한번 물리면 절대로 도망갈 수 없는 구조다. 물고 찢고 씹는데 특화된 구기로 진화돼 피식자를 일격에 제압해 잡아먹는 필살기의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낮에는 낙엽 밑이나 땅속에 숨어 있다가 대부분 야간에 먹이 활동을 하는 야행성 곤충이다. 주로 지렁이와 곤충 등 작은 생물을 잡아먹고 살며 죽은 동물의 사체에도 모여드는 등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성이다. 하지만 때로는 낮에 과일즙을 빨아 먹거나 땅에서 가까운 참나무 수액을 흡습하며 모여 있는 것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이 멋쟁이 녀석은 동식물을 모두 섭식하는 균형 있는 식단구성으로 먹이 환경에 잘 적응한 잡식성 곤충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친구는 성충이나 종령 애벌레로 월동해 연중 숲에서 관찰된다. 특히 여름철에 땅거미가 지고 맑은 날, 까만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반짝일 때면 랜턴을 들고 담양의 대숲길을 산책해보라. 플래시 불빛에 천상의 별처럼 반짝이는 지상의 멋쟁이, 보석벌레를 만나는 행운을 잡을지도 모른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