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속 곤충여행⑱ 사시사철 푸른, 풀색노린재
대숲 속 곤충여행⑱ 사시사철 푸른, 풀색노린재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9.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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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색노린재(녹색형)와 청개구리의 동상이몽, 담양 금성.
풀색노린재(녹색형)와 청개구리의 동상이몽, 담양 금성.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사시사철 푸른, 풀색노린재

대나무 숲에 들어가면 짙푸른 진초록의 대통과 댓잎을 볼 수 있고, 대바람 소리가 들린다고 이전에 본지의 칼럼에서 기고한 적이 있다. 더불어 대숲에서는 대나무 향기가 코끝에서 은은하게 맴돈다. 그러고 보니 대숲에 가면 시청각과 후각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어 자연 속에 동화된 물아일체의 장소가 된다. 더구나 매끄러운 대나무를 손으로 만지면 촉감으로 피부감각을 자극하고, 대숲 인근 찻집에서 댓잎차를 마신다면 그야말로 오감(五感)으로 공감각적 사유를 할 수 있는 힐링공간일 수밖에 없다.

대숲은 우리에게 정서에 도움을 주는 좋은 냄새를 제공하는 반면에, 그 대숲 속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무기로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가는 곤충이 있다. 영어로는 악취가 나는 벌레라고 해서 stink bug(냄새곤충), 등가슴 아래 역삼각형 방패 모양이 있어 shield bug(방패곤충), 마치 갑옷을 입은 장수 모습이라 soldier bug(군인곤충), 생뚱맞게도 true bug(진짜곤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노린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녀석을 손으로 만지면 노린내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므로 노린재라고 명명하였으니 영어의 stink bug(악취곤충)와 일맥상통한다.

지구상에 노린재목()은 전 세계적으로 약 85천 여종, 우리나라에는 1900 여종이 조사돼 있다. 대부분 육상에서 살며 식물 즙액을 빨아 먹거나, 포식성인 침노린재처럼 다른 곤충의 체액을 빨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소금쟁이, 게아재비, 물자라, 물장군 등은 다른 곤충이나 물고기, 올챙이 등의 체액을 빨아먹으며 물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흡혈하며 살아가는 위생곤충인 빈대, 노랫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매미,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진딧물 등도 노린재목에 속한다. 곤충 중에서 딱정벌레목 다음으로 많은 종들이 지구상에서 다양하게 생활하며 먹이생태계의 커다란 축을 이루고 있다.

이 노린재목의 가장 큰 특징은 수천만년 동안 생존경쟁을 하며 입의 큰턱과 작은턱이 찌르는 형태인 길쭉한 부리 모양으로 변형하며 적응 진화해 왔다. 이 부리처럼 생긴 기다란 주사바늘로 식물이나 동물의 몸에 소화효소가 포함된 침(타액)을 주입해 숙주의 몸에서부터 소화해 흡입한다.

이 노린재목 중에 댓잎의 색과 비슷해 대숲 속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기주식물인 돌콩, 여우팥, 칡 등 야생 콩과식물이 대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대숲 가장자리 울타리에서는 자주 관찰되는 풀색노린재(Nezara antennata)가 있다. 1년에 2번 발생하며 성충으로 겨울을 난다. 색깔의 개체변이가 심해 몸 전체가 녹색인 녹색형과 머리와 앞가슴 쪽의 몸 앞쪽이 노란색을 띠는 개체가 있어 종 동정 초기에는 다른 종으로 오인할 수 있다.

풀색노린재가 뿜어내는 냄새샘은 약충(불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의 애벌레)일 때에는 등 쪽에 있다가 성충일 때는 뒷다리 기부 부근에 1쌍이 있다. 냄새 성분은 휘발성의 헥산올(hexanol) 물질로 새들이 이 노린재를 잡아먹게 되면 역겨운 냄새를 풍겨 곧바로 뱉어낸다. 이 쓴맛과 특이한 악취는 입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맴돌기 때문에 한 번 혼쭐이 난 새는 기억을 상기시키는 학습효과로 다시는 잡아먹지 않는다. 하지만 개구리는 자신보다 작은 물체가 움직이면 무조건 잡아먹기 때문에 풀색노린재가 움직이면 낚아채지만 곧바로 뱉어버린다. 이렇게 방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생존전략 물질이 알로몬(allomone)이다.

알로몬은 어떤 생물의 체내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다른 종에게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 물질이다. 수분(꽃가루받이)을 위해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꽃냄새나 무당벌레와 노린재처럼 고약한 냄새를 내뿜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물질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페로몬(pheromone)은 같은 종들 사이에 냄새로서 신호를 보내 의사소통을 하는 화학물질이다. 개미나 꿀벌처럼 위험을 알리는 경보페로몬, 나비처럼 수컷을 유인하는 성페로몬, 진딧물처럼 동료를 모이게 하는 집합페로몬 등이 있다.

대숲에서 풀색노린재가 대통이나 댓잎을 찔러 흡즙하는 모습을 필자는 아직 관찰하지 못했다. 아마도 대통은 겉이 딱딱하고 댓잎 또한 질기고 얇아 수액을 빨아 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풀색노린재는 잡식성이 강하기 때문에 주변에 영양이 풍부한 다양한 식물들의 연한 새순들이 많다. 대숲에는 피해를 주지 않고 대나무처럼 사시사철 푸른 자태로 오랫동안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