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속 곤충여행⓹ 대나무 그루터기 사랑, 흰줄숲모기
대숲 속 곤충여행⓹ 대나무 그루터기 사랑, 흰줄숲모기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4.2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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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벤 그루터기는 꼬마웅덩이가 된다
이곳이 모기의 생명 탄생 비밀 아지트다

잘려 나간 대 자리는 죽어서 보시를 하고
대숲에 사는 흰줄숲모기는 대를 자른 자에게
그 대가로 흡혈을 하며 고통을 준다
흰줄숲모기 흡혈관, 실체현미경 ×30배, 담양 죽녹원.
흰줄숲모기 흡혈관, 실체현미경 ×30배, 담양 죽녹원.
그루터기 속 장구벌레, 담양 만성리 대숲.
그루터기 속 장구벌레, 담양 만성리 대숲. ※휴대폰으로 이 QR 코드를 찍으면 신비한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 대나무 그루터기 사랑, 흰줄숲모기

대는 대부분 땅속줄기로 번식하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하나의 대숲에는 유전자가 모두 같다. 그루는 다르지만 땅속에 줄기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모두 한 몸이다. 대를 베고 나면 아랫동아리만 남는다. 속이 비어 있고 마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대나무 그루터기가 컵처럼 물을 담을 수 있게 돼 있다. 비가 내리면 그루터기에 물이 고여 꼬마웅덩이가 된다. 이곳이 모기의 생명 탄생 비밀 아지트다. 대는 비록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잘려 나간 자리지만 죽어서도 보시를 하고 있다.

대숲에 서식하는 모기의 대부분이 동양의 호랑이모기(Oriental tiger mosquito)로 번역되는 흰줄숲모기(Aedes albopictus). 사람들은 대숲에 들어가면 이 모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피를 빨리며 가려움으로 괴로워하고 때로는 지카바이러스나 뎅기열이라는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인간이 대를 잘라냈으니 그 대가로 고통에 시달리는 건 사필귀정이다.

흰줄숲모기는 고생대 데본기(Devonian period, 35천만년 전)에 처음 출현했다. 몸길이가 4.5정도로 겨우 눈에 띄는 아주 작은 곤충이다. 대부분의 모기들이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지만 흰줄숲모기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사람과 동물의 피를 노린다.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을 쫓아오며 흡혈을 한다.

흰줄숲모기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향으로 적응해 왔다.

첫째, 낮과 밤에 나타나 기습공격을 하는 기민성. 둘째, 감각기관의 최적화로 목표물의 정확한 위치 추적. 셋째,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장술과 초미니 소형화. 넷째,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가공할만한 비행술과 속도. 다섯째, 피부에서 느끼지 못하는 가느다란 마이크로미터 흡혈관과 마취. 여섯째, 환경 변화에 신속한 대처 능력 등 모두가 생존에 최적화된 생명체다.

산란은 대나무 그루터기의 고인 물 가운데에 낳는 것이 아니라 수면과 맞닿은 대통 안쪽 면에 낳는다. 알은 한 번에 보통 100여개를 낳는다. 산란이 끝나면 또다시 흡혈을 해 2~3회 더 알을 낳기도 한다. 이후 비가 그치면 그루터기에 물이 마르고 알은 바짝 말라 혹독하게 건조된 상태에도 죽지 않고 견뎌내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꿋꿋하게 다음 비가 올 날을 기다린다. 며칠 후 비가 내리고 알이 축축해지면 금방 알이 깨어난다. 보통 알은 10일 정도면 깨어나지만. 산란 시기가 각기 달라도 모든 알들이 일시에 똑같이 깨어난다.

애벌레인 장구벌레 역시 급속도로 빨리 우화한 후 성충이 된다. 대숲의 그루터기는 흰줄숲모기의 자손번식을 위한 육아방이다. 장구벌레의 요람이며 미니 풀장이다. 이런 특이한 흰줄숲모기의 대숲 생태는 장마와 가뭄, 우기와 건기의 혹독한 자연 상태에서 수억년 동안 자손번식을 위한 고도의 적응과 진화를 해 온 것이다.

장구벌레가 5일 정도 지나면 번데기로 된다. 특이하게 배 끝에 오리발이나 가재의 꼬리채처럼 생긴 납작한 헤엄채가 있다. 곤충들의 번데기는 대부분 움직임이 거의 없거나 미약하다. 하지만 흰줄숲모기의 번데기는 물속에서 자주 헤엄을 치며 이동을 한다.

흰줄숲모기의 유충이나 번데기가 사는 그루터기 대통 속 물은 정지된 물로 오염이 되기 쉽다. 하지만 여러 마리가 헤엄을 쳐 풀장 속 물을 움직이고 포말을 일으켜 산소 공급을 한다. 자주 몸을 움직여줌으로써 몸에 신진대사가 활발하여 빠른 성장과 우화를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물속의 번데기마저도 생존을 위하여 환경적응에 최적화된 곤충이다. 번데기는 3일이면 우화하여 마침내 성충이 된다.

흰줄숲모기 암컷은 평생에 한 번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가 끝나면 필수적으로 동물성 고단백질인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야 건강한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이 종합 영양제를 섭취해야 배 속의 난자는 빠르고 충실하게 자란다. 자신을 위해서 피를 빠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태어날 자식만을 위해서 흡혈을 하는 태생적 본능이다. 자손번식을 위해 흡혈을 할 수밖에 없는 모정(母情)이 강한 곤충이다.

자식 사랑 때문에 인간의 피를 훔친 자손번식형 도둑질의 독특한 생태를 보여준 흰줄숲모기의 모정에 미워도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대숲에서 모기에게 물리면 젖동냥한 작은 요정에게 병아리 눈물만큼도 안 되는 피를 적선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다.

성충인 흰줄숲모기는 평균 한 달 정도 살고 생을 마감한다. 비록 짧은 일생이지만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대숲 속에서 혹독한 시련를 마주하며 당당히 모기의 길을 가고 있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