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속 곤충여행⓸ 대통 속 아파트, 뿔가위벌
대숲 속 곤충여행⓸ 대통 속 아파트, 뿔가위벌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4.1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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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 ‘추억의 샛길’ 양옆 작은 키의 대 군락
큰 대 밑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식물, 이대
죽어서는 다른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터 제공

이대를 다발로 묶어 처마 등지에 놓아두면
이 대롱 속에서 뿔가위벌이 평생을 살아간다
대롱 속 뿔가위벌 고치들
대롱 속 뿔가위벌 고치들
대롱속 뿔가위벌 번데기
대롱속 뿔가위벌 번데기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⓸ 대통 속 아파트, 뿔가위벌

()는 속이 없다. 속이 비어있는데 곧게 자라고 단단해 잘 부러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안쪽이 단단하고 표피 쪽으로 갈수록 무르다. 하지만 대는 그와 반대로 바깥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하다. 마치 곤충들의 뼈가 바깥쪽에 있어 외골격으로 단단하게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순천 조계산 선암사 입구에서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대통을 반으로 자른 것처럼 속이 비어있는 보물 다리, ‘승선교가 있다. 때로는 세찬 물줄기가 수백년 동안 훑고 지나갔어도 아직도 그 자리에 꿋꿋이 묵상하고 있다. 밑바닥부터 시작된 각각의 돌들 짜임을 마지막 사다리꼴 모양의 쐐기돌로 마무리한 모습이 마치 대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는 듯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가 교감하는 느낌을 받는다. 대도 승선교처럼 세포와 세포끼리 원형으로 배열돼 세포와 조직이 치밀하며 단단하게 맞물려 있다.

담양의 죽녹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운수대통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의 길 속에 길로 갈라놓은 작은 대 모둠들이 촘촘히 엉켜 터널을 이룬 비밀의 쪽문 같은 오솔길이 나오는데 추억의 샛길이다. 이 샛길의 양옆에 키가 고작 2~4m밖에 안 되고, 줄기도 손가락 굵기만한 대숲의 군락이 있다. 비록 큰 대 밑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죽어서는 몸속의 빈 공간에 다른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생명 순환의 아름다운 터를 제공하는 소중한 식물, 이대(Pseudosasa japonica).

이대를 베어와 다발로 묶어 처마 등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놓아두면 벌들이 찾아온다. 이 대롱 속에서 생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바로 뿔가위벌(Osmia pedicornis)이다. 얼굴의 이마방패 좌·우측이 마치 뿔처럼 부풀어 오른 돌기가 있고, 큰턱이 물체를 자르는데 가위처럼 이용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명명했다. 성충이 3월말~4월초에 나와 20~30개의 알을 낳으면 애벌레가 자라 8~9월에 고치 속에서 다시 다음 세대 성충이 된 후 겨우내 신병처럼 대기발령 상태로 있다가 이듬해 따뜻한 봄에 맞춰 나온다. 수벌은 암벌보다 2~3일 먼저 나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암벌이 나오면 곧바로 짝짓기를 한다. 꽃가루를 옮겨주는 기간은 4~6월이다. 특히 사과의 수분율이 양봉꿀벌에 비해 80% 이상 높은 우수한 화분매개곤충이다.

춘삼월이 되면 벌들의 아파트 공사장은 손님들로 분주해진다. 새로 입주할 아파트는 당첨과 함께 청약금을 내고 분양하는 방식이 아니다. 암벌이 직접 집안을 둘러보고 마음에 들면, 다른 벌들이 찜하지 못하게 자기만의 독특한 페로몬을 방사해 영역표시를 한다. 구조물 뼈대는 대()로 튼튼하게 구축돼 있으니 대롱 속 집안 청소를 하고 자식이 살기에 부적합하면 흙벽을 바르는 등 손수 내부 인테리어를 해 집안단속을 한다. 이 모든 판단과 공사는 여럿이 협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암벌 혼자 진행한다. 심지어 수벌 도움도 없이.

뿔가위벌의 암수 결정은 포유동물처럼 수정과 함께 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미 벌의 상황 판단과 애벌레 먹이인 꽃가루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암컷이 될 알에게는 약 20회의 꽃가루를 날라다 대롱 안쪽 깊은 곳에 꿀과 섞어 경단을 만들고 그곳에 알을 1개 낳고 난 후, 촉촉한 부드러운 흙을 7회 정도 옮겨와 흙벽을 쳐 독방을 만들고 다음 만들 방과 분리한다. 수컷이 될 알에게는 약 15회로 약간 적은 양의 경단을 입구 쪽에 배치해 나중에 암컷보다 먼저 나올 수 있도록 한다. 무거운 물건을 가득 안고 평균 25번 이상을 들락거려야 방 하나를 만들 수 있다.

흙으로 격막을 해서 애벌레가 철저한 독방 생활을 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만약 단단한 흙벽이 없다면 애벌레들이 먹이를 공유하게 돼 각각의 애벌레 먹이 양이 달라져 암수 성비를 조율할 수 없게 되고, 병원균에 감염되면 몰살하게 된다. 또한 천적의 침입에 방비가 허술하게 된다. 마치 외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외성과 내성을 쌓듯이 겹겹이 벽을 쌓아 방어선을 구축해 놓는 것이다. 도굴범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지막 외벽은 안쪽에 한 번 더 2중으로 차폐벽을 치고 두껍고 단단하게 마감한다. 대롱 속은 육아방으로 최적화된 뿔가위벌 아파트 요새다.

하지만 유사 이래로 도굴범이 어떤 녀석들인가. 이집트 파라오 피라미드, 중국의 황릉, 우리나라 왕릉 등의 대부분이 도굴됐다. 뿔가위벌 대롱 속 토굴을 침입하는 도굴범들은 응애, 수시렁이, 표본벌레, 다듬이벌레, 밑들이벌, 좀벌, 기생파리, 병원성 곰팡이류 등이다. 이같은 천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뿔가위벌 또한 종족보존을 위하여 각종 테크놀로지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