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나무이야기] 2. 대나무
[담양 나무이야기] 2. 대나무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4.04.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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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밭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 있는 곳에 대밭이 있다

​​​​​​​대숲 주변에는 물이 마르지 않아
흉년 걱정 없이 농사짓기 좋았고
다양한 농사 용구 만들어 이용했다

대밭 가진 주민들은 대나무를 잘라
공예품 만들어 실생활에 사용하고
장에 팔아 자녀 교육과 살림에 보탰다
그래서 대밭을 ‘생금밭’이라 불렀다
담양읍 삼다리 내다마을 대숲 / 김정한 사진작가
담양읍 삼다리 내다마을 대숲 / 김정한 사진작가

언젠가 마을 조사를 나갔다가 어르신들로부터 담양 지명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바깥에 사람덜이 여그만 오먼 사방에 맨 대만 많다고 혀서 대만, 대만하다가 대명, 대명하더니 고것이 자꾸 빈해서 난중에는 담양이 되분 것이여~~”

? 정말요?”

~, 맞어~ 우리덜 어렸을 쩍에는 다 대명장에 간다고들 그렸어.”

 

대명장이란 물론 담양장의 사투리식 발음이지만 어르신들이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그만큼 담양에 대가 많았음을 뜻하는 일례일 것이다. 그래서 담양은 예로부터 대밭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 있는 곳에 대밭이 있다고 일컬어져 왔다.

 

대나무는 순수한 우리나라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를 목본(木本)으로 보고 +나무의 합성어를 만들었다. 대나무를 한자말로는 죽()이라고 하는데, 글자의 모양으로 보면 물론 대나무 가지에 잎이 달린 모양이나 풀초()자를 거꾸로 한 모양이기도 하다. ‘라고 할 때 대는 분명 식물 분류상 벼과에 속하며 나무와 전혀 다른 조직을 갖춘 식물이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나이테가 없고, 꽃이 필 때는 벼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대나무는 학술적으로 벼과(一科 Poaceae)에서 대나무아과(一亞科 Bambusoideae)에 속하는 키 큰 풀의 총칭이다. 이에 서양의 식물학자들은 대나무를 ‘grass()’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나무라는 말을 붙여서 목본으로 바꿔버리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분명 대가 땅에서 자랄 때는 벼과에 속하는 초본 식물이 맞지만, 다 자라고 나면 베어서 목재로 사용하니 그 용처를 볼 때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산림청에서는 대나무를 나무와 같이 목재로 활용하기 때문에 나무로 분류하고 있다. 대나무를 나무로 파악하는 이유는 줄기가 살아 있으며, 잔가지가 자라고, 새잎이 돋고, 오래된 잎은 말라서 떨어지며, 목질부를 가진 식물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담양의 자연환경은 연평균기온 12.5내외, 1월 평균기온은 1.5내외, 8월 평균기온 26.5내외, 연강수량은 1290내외의 다우지역이며, 토질이 사토층 위에 흑토층으로 풍옥한 평야지대이다. 영산강 시원의 맑은 물이 담양군 중심부로 모아들어 생물다양성을 형성해주고, 북풍을 막아주는 북쪽의 높은 산들과 분지형의 지형이 담양을 아늑하고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와같이 기후와 토양이 대나무가 살기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보니 담양은 예로부터 마을마다 대밭이 없는 마을이 없다 할 정도로 거의 모든 마을이 대밭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3.7%인 담양의 대밭에서 현재 전국에서 자생하는 대나무의 34.4%가 자라고 있다.

 

대숲이 있는 주변에는 물이 마르지 않아 흉년 걱정 없이 농사짓기가 좋았고, 또 대나무로 다양한 농사 용구를 만들어 편리하게 이용하기도 하였다. 대밭을 가진 주민들은 대나무를 잘라 여러 가지 공예품을 만들어 실생활에 사용하기도 하고, 그것을 장에 팔아 자녀들의 교육에 쓰거나 살림에 보태었다. 이런 대밭을 두고 살아 있는 금을 캐는 밭이라 하여 생금밭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담양에는 부채 마을, 참빗 마을, 석작 마을 등 대밭이 있는 곳마다 대나무 공예마을이 있어 전통 기예의 명맥이 이어지고 가업을 계승한 장인들이 많다. 대나무 제품이 마을 단위로 제작되는 것은 대부분 가족에게서나 마을의 웃어른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에 필요한 대나무와 마을에서 자라는 대나무 종류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략 일제강점기 이후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가ㅤ죽물시장의 최고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가 담양에 철도를 놓고 질 좋은 죽세품이 몽고 등지에 수출되면서 담양의 5일 시장은 전국단위 규모가 가장 큰 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장날이 되면 이른 새벽에 집채만 한 죽물을 잔뜩 지고 오는 모습에 호랑이도 무서워 도망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래서 담양군에서는 지난 1979년 군민의 날을 기념하여, 대나무 고장의 명성을 선점코자 대나무를 군목(郡木)으로 정하였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지던 죽취일(竹醉日) 민속을 이어 대나무 축제를 해마다 개최하고, 대나무숲은 죽림욕장으로 변신하여 죽녹원이 담양 관광 1번지로 부상하였다. 죽물 시장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직도 담양의 마을마다 대밭은 푸르게 남아있어 죽순 판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담양 지역민과 함께해온 대나무밭은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2020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대나무군락 역시 전국 최초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전국 최초의 하천습지와 더불어 영산강의 허파로서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담양의 군목이며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대나무는 나무의 고장 담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나무이다. 지금도 담양은 대밭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 있는 곳에 대밭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글: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