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마을길 이야기] 1. 이야기를 시작하며
[담양 마을길 이야기] 1. 이야기를 시작하며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3.03.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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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화 속에서도 존속하는 담양 마을 길

청년들이 치유와 희망을 얻고,
고향이 그리운 중년, 삶을 되돌아보는 노년이
추억과 위로를 주는 담양만의 마을 길이 있다

마을 길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늙어 가는데
문명은 자주 길을 자르고 뚫고 없애버리곤 한다
저자는 아름다운 마을길 만나러 여정에 나선다
김정한 사진작가

 

1.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리말에서 길이란 양태나 규모에 따라서 오솔길·고샅길·산길·들길·자갈길·진창길·소로길·지름길 등으로 의미가 구체화 돼 사용돼 왔다.

이와같은 보행을 위한 육상 통로는 교통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물 위를 다니는 배의 통로는 뱃길, 철제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나 전철의 통로는 철길, 항공기가 다니는 공중의 통로는 하늘길로도 불린다.

길은 개념이 확대되고 다양화돼 실체가 없는 관념적 통로까지를 일컫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곧잘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곤 한다. 이때 세상은 잠시 쉬어가는 숙소로, 사람은 나그네로, 인생살이는 길 가는 것으로 여긴다.

이때의 길은 최초의 개념인 교통수단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본디 길은 인류의 생존사와 함께 생성, 발전한 것이므로 길이라는 우리말도 민족사와 함께 발생한 원초적 어휘의 하나였을 것이다.

 

길이란 인간의 의식과 주거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적 선형이다. 원시인들이 의식의 재료인 조수·과실·어패 따위를 주거로 운반하기 위해 반복 통행하면서 생긴 발자취가 곧 길의 원초적 형태였다면,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반복 통행한 곳은 식수원과의 통로, 즉 물길이었을 것이다. 일정한 주거와 식수원인 골짜기와의 연결선에서 길의 첫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길은 예로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생성되고 이용되었으니, 사람들이 사는 곳, 즉 마을의 길이 오늘날까지 길의 기본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길이란 마을에 나 있는 길, 또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말한다. 이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통하는 길을 말한다.

 

마을로 가는 길은 넓었다 좁아지고 한 갈래로 시작해 만 갈래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지만, 사람은 언제나 그 길의 품으로 돌아와 고단했던 하루의 눈을 감는다. 마을 길의 기억은 시간을 넘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유년시절 추억에서 햇살과 눈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태어난 마을의 길을 벗어나 도시로 갔다. 마을 길은 사람들과 같이했던 세월을 기억하고 다시 엉킬 수 있는 날을 기다렸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 길에서 놀지 않았다. 마을 길은 누구에게는 탈출구의 고향이었지만, 대부분 향수로 가고 싶은 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정착의 시작이기도 했다.

 

담양에는 작은 마을이 열리기 시작한 까마득한 시간 속 담장 길이 있는가 하면 문명이 할퀸 흔적으로 세련되고 산뜻한 골목길이 새롭게 나 있기도 하고, 한쪽은 흙돌담 향수로, 맞은편 담은 미장 칼의 매끈한 솜씨 위로 벽화가 서로를 응시하기도 한다.

이 길들은 빛의 신비로움에 따라 포옹하는 그림자로 밤을 넘기고, 아침이오면 산뜻하게 다시 서로를 응시하는, 사람의 살림살이와 비슷한 음과 양의 이치를 보이곤 한다.

 

담양에서 거주하는 저자는 영산강 시원에서 시작된 물길과 골짜기마다 이어지는 산길, 마을 추억을 일깨워주는 돌담길, 숲길과 가로수길을 찾는 많은 이들을 만났다. 도시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이 치유와 희망을 얻고, 고향이 그리운 중년과 삶을 되돌아보는 노년이 추억과 위로를 찾아가는 것을 보았다. 이 작은 고장의 매력은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에 지역민과 외래객이 위화감 없이 섞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지점에 담양만의 마을 길이 있다.

 

저자는 본 연재를 통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존속하는 담양 마을 길의 아름다움을 담아볼 것이며, 김정한 사진작가의 드라마가 그 몫을 바쳐줄 것이다. 마을 길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늙어 가는데 문명은 자주 길을 자르고 꺾고 뚫고 없애버리곤 한다. 하지만 길은 한탄도 없이 변화하는 자신을 순하게 받아들여 왔다. 이 변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김정한 사진작가는 도시에서 몸을 옮겨 담양에서 일 년을 살았으며 앞으로도 담양 살이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문학작가 심진숙(沈眞淑)

 

전남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재학을 전공했다.

종합문예지 시와 산문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천년담양설화발굴조사팀장·담양향토문화유산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담양문화원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담양문화원 담양학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시집 반듯한 슬픔’, ‘지네발난처럼’, 동화집 천년대숲이야기’, 사진시집 ‘Damdahm1’, 사진에세이집 일년살이 골목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