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속 곤충여행 ⑳ 기후 따라 대를 이어, 각시메뚜기
대숲 속 곤충여행 ⑳ 기후 따라 대를 이어, 각시메뚜기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10.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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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의 막바지에 나타난 각시메뚜기, 담양 금성.
추운 겨울의 막바지에 나타난 각시메뚜기, 담양 금성.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기후 따라 대를 이어, 각시메뚜기

봉황은 죽실(竹實, 대나무 열매)을 먹고 오동나무에 깃들인다.”

처음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문헌을 찾아보니 중국 고서에 많은 기록이 있다. 수많은 문장가들이 봉황의 고귀함과 기품을 노래했다.

덩달아 중국 문물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문인들도 앞다투어 봉황을 극찬했다.

지구상에 있지도 않은 상상의 동물인 봉황이 과연 대나무 열매를 먹었으며 오동나무에 깃을 틀고 살았을까?

가상의 생물로 시작되는 이야기 자체가 허구(fiction).

먼 옛날 언젠가 어느 누가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구전돼 이제는 허상인 전설이 실존처럼 둔갑해버렸다.

지금도 윤리, 도덕과 교훈이라는 미명 아래 엉터리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를 현혹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문해본다.

대에 대한 인문학을 말하려면 최소한 자연과학의 기틀 아래 사실(fact)에 입각한 글을 전제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는 그저 수억년 동안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식물의 한 가지일 뿐이다.

봉황은 전설 속 상상의 새이지만 죽실은 운이 좋으면 대숲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열매다.

열매가 있기에 대나무는 종자식물이다. 종자()가 생기려면 반드시 꽃이 피어야 하기 때문에 꽃식물이라고도 하다. 대나무도 꽃이 피기 때문에 엄연히 꽃식물이다.

대나무는 일부 몇몇 종을 제외하고 꽃이 피면 모두 죽는 특성이 있다.

처음 한 그루의 대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대들이 덩달아 꽃을 피운다.

이러한 현상을 혹자는 개화병, 전염병 심지어 집단 자살이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낭설이다.

정작 대숲을 이루는 근간은 뿌리줄기(지하경, 地下莖)가 실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다.

지상에서 보면 각기 다른 줄기처럼 보이지만 땅속을 파보면 모두 다 하나로 연결된 한 몸뚱이에서 꽃이 피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숲에서 대는 대를 이어 살아가는 한 족속의 DNA.

꽃이 피는 원인은 영양부족, 개화주기,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기후변화가 가장 큰 영향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대나무야말로 기후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해온 대표적인 기후변화 대응식물이기 때문이다.

2017년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계절 변화, 군집 변화, 분포 변화 등이 예상돼 지속적으로 조사·관리가 필요한 종을 선정해 100종의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을 발표한 바 있다.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중에는 벼과식물(화본과식물)인 벼나 대나무 잎을 먹고 사는 메뚜기목() 메뚜기과()의 각시메뚜기(Patanga japonica)가 있다. 현재 제주도와 중남부 지방에만 서식하며 기온 등의 변화로 인해 북쪽으로 분포 확대가 예상된다. 국가적으로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종이기 때문에 서식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종을 동정(同定)하는데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양쪽 겹눈 아래로 눈물 자국처럼 검은 줄무늬가 있다. 이 모습 때문에 새색시의 친정에 대한 그리움과 시집살이 한()을 연상해 이름에 각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추론보다는 오히려 무늬와 색깔, 모습, 생태 등이 색시처럼 단아한 분위기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몸이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고 있어 흙메뚜기, 땅메뚜기라고도 하지만 노랑이나 붉은색 계열의 색을 띠는 개체변이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일본등줄메뚜기라고 불렀던 것은 학명의 종소명인 japonica에서 일본과 앞날개의 가운데 부분에 세로의 굵고 밝은 줄무늬가 있기 때문에 등줄이 합쳐진 이름이다.

남방계 메뚜기로 더운 지방에서 살다가 기후변화 때문에 올라온 종이다.

남방계 곤충들은 대부분 성충으로 겨울을 지내는데 이 각시메뚜기도 겨울에 성충으로 월동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계절이 없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살도록 적응해 왔기 때문에 굳이 추위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변온동물로 우리나라에 귀화해 추운 겨울에는 양지바른 낙엽이나 마른 풀덤불 밑에서 겨울잠을 자며 100여 일을 견딘다.

체내에서 포도당의 중합체인 글리코겐을 당알코올 성분으로 전환해 마치 자동차 엔진에 부동액을 첨가해 얼지 않게 하는 기능과 같은 체내 기작을 발동한다.

유충 시기에는 초록의 풀밭에서 생활하므로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지만 성충은 땅 색인 밝은 갈색 계열로 체색변화를 해왔다.

특히 대숲은 대나무 아래에 깔린 댓잎 낙엽의 색과 비슷한 각시메뚜기의 몸 색깔, 댓잎사귀 형태와 흡사한 날개 모습 등이 의태를 연출해 은신하기 좋은 서식지로서 안성맞춤이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