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속 곤충여행⑫ 댓잎말이 고수, 줄허리들명나방
대숲속 곤충여행⑫ 댓잎말이 고수, 줄허리들명나방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7.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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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 등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댓잎으로 말아 만든 집 속에 숨어 살며
그 속에서 싱싱한 댓잎 야금야금 뜯어먹고 산다

특이한 집에서 의·식·주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참으로 희한한 대숲속살이 곤충이다
나들이 나온 줄허리들명나방 유충, 담양 향교리
나들이 나온 줄허리들명나방 유충, 담양 향교리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속 곤충여행댓잎말이 고수, 줄허리들명나방

담양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가장 괄목할만한 대표적인 식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대()이다. 대는 벼와 유연관계가 깊어 벼과식물(화본과식물, 禾本科植物)로 분류한다. Local name , 한국명은 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나무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나무로도 부르는 이유가 있다. 대는 형성층(부름켜)이 없어 부피생장을 못하니 나이테가 없는 풀(초본)이고, 단단하게 목질화 돼 있고 여러 해를 살기 때문에 나무(목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산 윤선도 선생은 오우가에서 대는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다고 노래했다. 바꿔 말하면 나무이면서 풀이기도 하다.

대나무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줄기나 가지가 초록색이다. 초록색이라는 것은 엽록체가 있어 줄기나 가지에서도 비록 적은 양이지만 광합성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광합성량이 많아 힐링 치유식물이다. 대의 이산화탄소 흡수력은 연간 29.34톤으로 소나무의 4배에 달한다. 대는 아열대성 식물로 인간의 화석연료 오남용으로 인해 더워지는 지방을 따라 이동하며 지구온난화를 지연시키는 온실가스 감축 식물이다.

대숲에서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산소를 내놓는 일을 하는 초록색 댓잎사귀를 김밥 말 듯이 돌돌 말아 그 속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더부살이 곤충이 있다.

줄허리들명나방(Sinibotys evenoralis) 애벌레는 말아놓은 댓잎 속에서 겨울을 지낸다. 월동한 애벌레는 3월 하순~5월 중순에 댓잎에 피해를 주고, 6월 상순~7월 하순, 8월 중순~10월 중순 등 3번의 피해를 준다. 애벌레가 댓잎을 갉아 먹게 되면 잎의 가장 중요한 일인 탄소동화작용 능력이 떨어진다. 결국 양분이 부족해져 땅속줄기 생장의 억제와 대의 품질이 저하되고 대꽃이 피어 말라 죽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요인이 된다.

성충인 나방은 5월 중순~6월 중순, 7월 상순~8월 상순 연 2회 나타난다. 애벌레 때 실을 토해내어 한 장이나 여러 장의 댓잎을 돌돌 말고 그 속에서 댓잎을 갉아 먹고 살아가므로 필자는 댓잎말이나방이라고 칭한다. 이런 댓잎말이나방 종류는 담양에 3종이 있다. 명나방과의 줄허리들명나방, 누이줄허리들명나방, 줄노랑명나방이다.

줄허리들명나방 애벌레가 댓잎을 말아 몸을 은신하며 살아가도록 진화해 온 가장 큰 이유는 애벌레를 먹이로 좋아하는 박새나 곤줄박이,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의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예 댓잎으로 만든 집 속에 숨어 살며 그 속에서 싱싱한 댓잎으로 말아놓은 집을 야금야금 뜯어먹고 산다. 세상에 자기가 지어놓은 집을 먹어치우다니 참으로 희한한 녀석이다.

그렇다면 배설물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좁은 집 안에서 똥과 뒤엉켜 살아갈 것으로 여겨지는데 집을 열어보면 의외로 깨끗하다. 배설물은 말아진 잎끝으로 밀어내어 한 켠에 모아둔다. 화장실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어느 정도 집이 망가지면 슬금슬금 밖으로 나와 또다시 싱싱한 잎을 찾아 댓잎말이를 해 새집을 마련한다. 특이한 집짓기로 겉옷을 입고 먹을 양식까지 챙기다니, ··주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독특한 삶의 지혜를 터득해 대숲속살이로 코드화된 곤충이다.

곤충들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체구가 아주 작을뿐더러 확실한 자기 방어용 최종 병기가 없다. 천적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공격 모드가 거의 없다. 일부 사슴벌레가 집게 모양의 큰 턱을 벌리며 위협을 하거나, 사마귀가 톱니발을 치켜들며 앙! 버티기는 하지만 천적에 대한 공격용이 아니다. 제일 좋은 생존 방법은 날개와 다리를 이용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사방에 우글거리는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확실한 천적대응 필살기가 없는 곤충들은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 메커니즘을 발현해 온 것이 눈물겹다.

대벌레는 의태와 위장전술로, 참나무산누에나방은 눈알무늬로, 벌은 독침으로, 독나방 애벌레인 쐐기는 독가시털로, 장수풍뎅이는 두꺼운 갑옷으로, 노린재는 고약한 냄새로, 집게벌레는 배 끝에 있는 집게로, 잎굴파리 애벌레는 얇은 잎 속을 파고 다니며, 땅강아지는 땅속에서 은둔하며 자신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향으로 적응 진화해 왔다.

특히 우리의 주인공인 줄허리들명나방 애벌레는 댓잎말이라는 독특한 생존전략을 구가해 오며 대()에 곁방살이로 수천 만 년 동안 애증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