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속 곤충여행⓽ 댓가지 마술사, 대벌레
대숲속 곤충여행⓽ 댓가지 마술사, 대벌레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6.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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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식물과 닮은 모습 하고 있어
의태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대벌레
은폐의태·사냥의태·경계은폐·의사행동…

막대기로 살짝 건드리면 죽은 척
한참 있다가 일어나 슬금슬금 사라진다
대벌레, 담양호 데크길, 2012.6.1.
대벌레, 담양호 데크길, 2012.6.1.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댓가지 마술사, 대벌레

대는 모든 부분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우리 인간에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식물이다. 죽순은 음식으로, 죽순 껍질인 죽피는 방석이나 방자리로, 줄기는 대바구니와 밥그릇으로, 잎은 죽엽차로 만든다. 원줄기에서 쳐낸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댓가지는 빗자루로 만들어 매일 아침이면 마당을 쓸고 있다. 그야말로 온몸을 인간에게 보시하는 관용을 베풀고 있는 식물이다.

옛부터 수많은 묵객들이 대를 사군자로 칭하며 그려왔다. 사실 대는 군자도 아니요 선비도 아니다. 대는 서로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묵묵히 서 있는 그저 대일뿐이다. 대나무 그림에서 가장 멋을 부릴 수 있는 곳이 댓가지일 것이다. 만약 앙상한 원줄기에 댓가지가 없다고 생각해보라. 화가가 아무리 줄기와 잎으로 기교를 부린다 한들 올곧은 기품이 있을까?

대부분의 식물들은 잎이나 가지가 나올 때 마주나기나 어긋나기, 돌려나기 또는 규칙성 없이 제멋대로 한 개씩 나오지만 대는 독특하게 각 마디마다 가지가 한 곳에서 두 개씩 어긋나서 나온다. 낭창낭창하게 휘어있는 이 두 개씩 나 있는 곁가지가 있기에 대나무가 한층 더 곧게 보이고 멋과 풍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댓가지는 잘라내면 기껏해야 하잘것없는 청소도구로 전락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일을 하는 곁가지다.

대숲에 가면 아주 드문 기회이지만 이 댓가지 말고 또 다른 댓가지를 볼 수 있다. 바로 걸어 다니는 댓가지’, 이름에서도 자가 붙은 대벌레(Ramulus mikado). 대벌레는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며,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의 열대·아열대 지역에 많은 종들이 살고 있다. 이름처럼 몸과 다리가 길쭉한 원통 모양으로 대나무 가지를 닮은 기다란 곤충이다. 대나무 마디와 같이 생긴 곤충이란 뜻으로 죽절충(竹節蟲)’이라고도 불린다.

대벌레의 몸길이는 7~10정도로 날개가 퇴화돼 거의 보이지 않지만,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일부 종은 20가 넘는 대형 종이 날개를 넓게 펼쳐 행글라이더처럼 우아하게 활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알로 월동하며 봄에 부화한 성충은 여름부터 가을에 자주 볼 수 있다. 주로 참나무과의 나뭇잎을 먹고 살지만 여러 가지 식물들을 잘 먹으며 간혹 대규모로 발생해 식물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대벌레는 의태(擬態)의 대명사로 주변의 식물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의태는 생물 특히 동물 중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양과 색깔, 행동, 소리, 냄새 등 다른 생물과 유사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대벌레처럼 자신을 나뭇가지처럼 숨기는 은폐의태가 대부분이지만 오히려 반대로 다른 생물을 잡아먹기 위해 꽃이나 마른 가지로 위장하는 사냥의태도 있다. 심지어 적이 나타나면 고약한 냄새를 뿌리거나 적의 상위 포식자가 가지고 있는 최종 병기처럼 보이게 해 놀라 도망가게 하는 경계은폐도 있다. 대벌레도 앞가슴에 한 쌍의 악취선이 있어 앞다리 고관절(기절)로 냄새를 내보낸다.

대벌레는 의태뿐만 아니라 천적을 만나 위협을 느끼면 죽은 척하는 의사(擬死)행동을 한다. 대벌레를 막대기로 살짝 건드리면 나무에서 떨어져 앞다리와 가운뎃다리, 뒷다리를 쭉 뻗어 몸에 붙이고 죽은 것같이 움직이지 않고 한참 있다가 일어나 슬금슬금 사라진다.

또한 천적에게 다리를 잡혔을 경우에는 그 다리를 떼어 내주고 줄행랑을 친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고 몸을 보전하는 것과 비슷한 기작이다. 대벌레를 채집해 집에 가져와 보면 보통 다리가 한두 개는 떨어져 있어 이 녀석들은 표본 후 보수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가끔 마주치는 대벌레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다리가 유난히 짧게 자란 개체를 볼 수 있는데 다리가 떨어져 나간 후 재생한 것이다.

번데기 과정이 없는 불완전변태를 하며 환경조건에 따라 주로 처녀생식(단위생식 處女生殖)을 하므로 수컷은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처녀생식은 난자와 정자의 수정 없이 암컷 난자만의 분열(생식세포n체세포2n)로 배아가 형성돼 개체를 증식하는 것으로 핵을 제거하지 않은 난자가 충격을 받아 정자가 들어온 것으로 착각해 수정란을 만든다. 자연상태에서 벌, 진딧물 등 곤충이나 어류에서 관찰되고 포유류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일본과 미국의 실험실에서 쥐와 원숭이의 처녀생식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가끔 마주치는 대벌레를 보면 처녀생식의 신비로운 탄생, 재생의 경이로운 모습, 죽은 체하는 의사, 의태의 행동으로 둔갑술을 부리는 도사나 기인 같은 생을 살고 있는 녀석이 탄생 설화가 아닌 실존하는 존자이기에 대벌레교라는 종교(?)가 생기지 않을까?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