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속 곤충여행⓼ 대숲의 CSI 명탐정, 금파리
대숲속 곤충여행⓼ 대숲의 CSI 명탐정, 금파리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5.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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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과 사체 찌꺼기를 일찌감치 감지하고
제일 먼저 달려오는 곤충은 금파리

발로 털이나 날개로 사건기록을 남긴다
입으로 흡습한 망자의 DNA가 뱃속에 남아있어
사망 시기와 장소 등을 신속하게 알려준다
물에서 건져놓은 해캄 속 수서생물 사체를 감식하는 쉬파리(1)와 금파리(3), 담양에코센터.
물에서 건져놓은 해캄 속 수서생물 사체를 감식하는 쉬파리(1)와 금파리(3), 담양에코센터.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대숲의 CSI 명탐정, 금파리

대숲의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생물들의 은신처를 제공해 대숲만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보전하며 생물다양성을 유지해주는데 큰 의미가 있다. 키가 크고 촘촘하게 서있는 대나무 아래 조금씩 내비치는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 작은 식물들이 덤불을 이루며 얽히고설키며 살고 있다. 이 생산자인 식물들 속에서 1차 소비자인 곤충들이 몸을 숨기며 더불어 살고 있고, 이들을 먹고 사는 2차 소비자인 개구리 등이, 3차 소비자인 뱀이나 쥐·새 등이, 계속해 상위 소비자인 너구리··매 등이 먹이사슬과 먹이그물, 먹이피라미드를 이루며 대숲만의 독특한 먹이 생태계가 평형을 이루고 있다.

이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서 살생은 필연적이며 잔존물인 배설물과 사체 찌꺼기를 일찌감치 감지하고 자연으로 돌려주기 위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생물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에 쓰인 세계 최초의 법의학서 세원집록(洗寃集錄)’에는 이 곤충을 활용해 범인을 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리 끝에 미각 기관이 있는 이 곤충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파리, 네 맞습니다.” 이 퀴즈는 유퀴즈 온더블럭 제114화 여름방학 특집 방송에 나온 것을 발췌한 것이다.

수사관 송자(宋慈)의 법곤충학 저서 세원집록에 낫을 이용해서 살인사건을 해결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바로 이것을 물어본 것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송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사용하는 낫을 들고 오라고 한다. 그러자 모인 사람 중 유독 한 사람의 낫에만 파리가 모여든 걸 보고 송자는 그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범인으로 체포했다. 손잡이와 날에 남아있던 피 냄새를 맡고 파리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곤충의 특성을 이용해 범죄수사를 하는 학문을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이라고 한다. 곤충은 종마다 주변 온도, 습도, 날씨, 계절, 토양, 기후조건, 지리적, 지역적 특성 등 서식환경에 따라 음식물, 생명주기, 성장단계, 성장속도, 행동양식 등이 다르다. 이같은 곤충의 특성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학수사의 증거지표로 삼기에 딱 좋다. 곤충은 사건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당시의 진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곤충들은 어떤 방법으로 과학수사를 도와줄까? 이들은 시신의 사망 시기와 장소, 망자의 인적사항, 살인 도구나 독극물 종류 등을 어떤 방법으로 알려주는 것일까? 살인 현장에 있는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곤충에게 시간차 공격을 당한다. 제일 먼저 달려오는 곤충은 신선한 살을 좋아하는 금파리(Lucilia caesar). 금파리는 사망한 지 불과 2시간 이내에 찾아온다. 이 녀석들은 부패하기 전에 멀리서도 사체의 냄새를 맡고 재빨리 날아와 모여든다. 발로 더듬어 맛을 보고, 온몸에 난 털이나 날개에 죽은 사람의 사건기록을 남긴다. 또한 입으로 흡습한 망자의 DNA가 뱃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시신이 누구인지, 사망 시기와 장소 등을 신속하게 알려주는 CSI(과학수사대) 명탐정이다.

그 다음으로 검정파리, 쉬파리, 집파리가 순서대로 나타나 눈, , , 귀 등 상처 부위에 알을 낳는다. 애벌레인 구더기는 습하고 연한 조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체의 부패가 어느 정도 진행돼 7일 정도 지나면 송장벌레가, 10일 정도가 되면 건조한 조직과 연골을 좋아하는 딱정벌레 등이 현장에 나타난다. 1개월이 지나면 피부와 뼈에 남아있는 질긴 살이나 근육에 개미, 반날개, 밑쑤시기, 수시렁이, 말벌, 나비와 같은 곤충들이 기웃거리며 수사에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뼈만 남게 되면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돼 토양에 흔적을 남기며 사건 현장을 지키게 된다. 미생물들은 사건이 발생된 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현장에 지문처럼 남아있기 때문에 범죄수사에 단서를 제공하는 훌륭한 조력자들이다.

곤충들은 사체에 알을 낳고 유충의 성장단계와 탈피(허물벗기) 과정, 우화(날개돋이) 시기를 거치는 생명주기를 갖기 때문에 각각의 과정을 통해 망자의 사망 시기를 추정하는데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곤충은 들과 산지, 도시와 시골 등의 지리적, 지역적인 서식환경에 따라 살고 있는 종이 다르므로 사건현장이 남몰래 옮겨졌어도 감식해낼 수 있다. 더불어 사건 현장에서 채집된 곤충을 분석해 마약이나 독극물 복용 여부를 간접적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이렇듯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곤충이지만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명민한 과학수사대 요원이 틀림없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