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속 곤충여행⓻ 대숲의 세레나데, 베짱이
대숲속 곤충여행⓻ 대숲의 세레나데, 베짱이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5.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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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베짱이 수컷은 날개를 비벼
주변 생물들에게 세레나데를 연주해
가을밤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친구다

사랑노래는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 소리
이 소리는 종을 파악하는 동정의 고유 정보다
베짱이, 담양 남산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 속 곤충여행대숲의 세레나데, 베짱이

언젠가 금성산성을 바라보며 임도를 따라 곤충을 탐사할 때가 있었다. 첫들머리의 작은 능선을 지나 곤충채집도 하며 산길을 걷다 보니 담양호가 반갑게 맞이한다. 특이한 것은 군데군데 사면을 따라 대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호수에서 불어오는 살랑거리는 바람에 대숲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 얼마만인가? 어릴 적 고향 집 뒤뜰에 불어오는 대바람 소리를 이곳에서 듣다니.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왠 작은 곤충 한 마리가 댓잎에 앉아 있다. 분명 베짱이(Hexacentrus japonicus). 요즘 베짱이를 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숲에서는 더 그렇다. 베짱이의 몸은 댓잎과 거의 흡사하다. 머리의 정수리와 눈에서부터 시작해 앞가슴 부위를 지나가는 연갈색 선은 가운뎃가슴에서 감쪽같이 연노란색 날개선과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날개 모양이 실 잣는 북처럼 유선형을 이루며 배 끝으로 갈수록 댓잎처럼 뾰족해진다. 더군다나 날개 맥이 대나무 잎새처럼 나란하다. 이것은 고생대 후기에 종이 분화하면서 수억년 동안 외떡잎식물 잎에 붙어 살며 의태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베짱이를 보니 어릴 때 자주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이야기가 생각난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는 곤충으로 묘사되고, 베짱이는 그저 게으름뱅이일 뿐이다. 한여름에 노래나 부르며 게으름을 피우는 녀석으로 묘사해놓았다. 결국 베짱이는 추운 겨울에 거지가 돼 개미에게 식량을 구걸하는 신세가 된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접한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자랄까?

사실 베짱이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배가 고프면 육식성이라 지나가는 곤충 한두 마리를 잡아먹으면 그만이다. 실베짱이는 초식성이기 때문에 주변에 널려 있는 식물을 갉아 먹으면 된다. 때때로 시간이 나면 수컷은 날개를 비벼 사랑노래로 주변 생물들에게 세레나데를 연주해 가을밤의 정취를 맘껏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겉날개의 날개 맥이 마치 줄칼처럼 작은 굴곡이 있어 날개를 비비면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 소리를 낸다. 이 악기 소리는 종마다 달라 소리로써 종을 파악하는 동정의 고유 정보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이 소리를 울음소리라고 이야기해 왔다. 왜 우는 소리여야 하는가? 소가 울고, 새가 울고, 개구리가 울고, 매미가 울고, 우리의 주인공인 베짱이도 운다. 필자가 감히 주장하는데 이 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요 영역을 찜하는 소리다. 심지어 혹자는 대숲에 가면 대가 운다고 한다. 그 소리가 마치 귀신이 우는 소리처럼 들려 대숲이 무섭다고 한다. 이것은 헛소리다. 대는 그냥 바람이 불어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렸고 잎사귀들이 스쳤을 뿐이고 그 잎새가 베짱이 날개처럼 미세한 굴곡의 마찰로 소리를 냈을 뿐이다.

우리는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슬픈 정한의 소리가 아닌 아름답고 긍정적이고 생태적인 사실(Fact)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 서점이나 인터넷 매체에 판매되는 각종 이야기책들의 잘못된 표현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잘못 사용돼 온 말들이 학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로 둔갑해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베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베를 짜는 이를 나타내는 말로 이 붙은 것은 강아지, 송아지처럼 작은 생물을 지칭하는 지소사(指小辭)이다. 노랫소리가 베를 짜는 소리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가을밤 호롱불빛에 베를 짜는 여인이 생각나는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예쁜 이름이다.

베짱이는 인간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어차피 가을이 되면 짝짓기 후에 땅속이나 식물조직에 알을 낳고 겨울이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한다. 동화처럼 개미에게 동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미에게 자신의 몸을 보시해 겨울 식량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떠날 때도 아름다운 생의 미덕을 보여주는 생물이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곤충이다.

하지만 개미는 대부분이 육식성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을 잡아먹어야 산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성가신 존재다. 겨울에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월동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개미가 나쁜 곤충은 아니다. 그저 베짱이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먹이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모든 것을 인간의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곤충의 입장에서 곤충의 생태를 조금만 알고 이해했어도 개미와 베짱이같은 비생태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곤충의 스토리텔링을 잘못하면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누가 노래하는 방탄소년단(BTS)을 게으른 베짱이라고 하겠는가.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