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속 곤충여행⑭ 배마디는 대마디, 밀잠자리
대숲속 곤충여행⑭ 배마디는 대마디, 밀잠자리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2.07.2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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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가지에 앉아있는 미성숙 밀잠자리(♀), 에코센터 대숲
댓가지에 앉아있는 미성숙 밀잠자리(♀), 에코센터 대숲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속 곤충여행배마디는 대마디, 밀잠자리

710일자 본지 칼럼 댓잎말이 고수, 줄허리들명나방에서 필자는 대는 풀이면서 나무이고, 줄기에도 엽록체가 있다라고 대의 특징을 기고한 적이 있다.

또다른 특징을 덧붙이면 대는 마디가 있고 속이 비어있으며 곧다. 다른 나무들처럼 끝없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2개월 이내에 모두 자라고 죽을 때까지 키가 영원히 정지해 있다. 즉 길이 생장이 멈춘다.

마지막으로 대의 독특하고 유별난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모든 나무는 길이가 자랄 때 뿌리 끝, 줄기끝, 가지끝, 잎끝이 자란다. 하지만 대는 여기에 덧붙여 한 곳이 더 있는데 바로 마디다. 다시 말하면 길이생장점이 마디에도 있다는 뜻이다. 마디는 가느다란 대가 높이 설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구실도 하지만 가장 큰 역할은 마디에 생장점이 있어 각 마디마다 길이생장을 해 대가 10m 이상까지 자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마디의 생장점을 이용해 대나무 분재를 만들 수 있다. 봄에 죽순이 30쯤 올라오면 밑에서부터 죽순 껍질을 날마다 조금씩 벗겨내면 키가 크게 자라지 않는다. 물론 끝까지 모두 벗겨버리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죽어버린다. 마디에 둘러 난 껍질을 강제로 벗겨낸다는 것은 생장점을 도려내 상처를 낸 격이다. 마치 어린이가 발가락이나 발목의 생장점을 다치면 생장이 멈추는 것과 같은 이치다. 껍질을 벗겨낸 죽순은 줄기가 연해 어느 정도는 구부려 모양을 낼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인간의 볼거리와 재밋거리로 식물의 줄기를 구부리고 가지를 잘라내어 만든 분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대의 멋은 곧게 자란 줄기에 있다. 곧은 줄기가 아닌 휘어진 대에 진초록의 댓잎이 붙어 있은들 무슨 품격과 자태가 나겠는가? 잠시 볼거리는 될지언정 대나무 분재를 만드는 과정을 알면 안쓰러울 것이다.

밀잠자리(Orthetrum albistylum)도 대처럼 온몸이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배에는 총 10개의 마디가 있다. 머리와 가슴에서 이어지는 배의 제1,2,3,4 마디가 한데 뭉쳐져 볼록 튀어나온 부분과 연결된 나머지 배마디 모습이 댓가지의 마디로 착각할 만큼 닮았다. 날개의 모양도 댓잎과 유사하면서도 투명해 대나무 가지에 앉아 있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의태를 보여준다.

잠자리의 조상은 고생대 석탄기 후기 약 3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에는 날개의 길이가 약 60~70의 메가네우라 같은 대형 종들이었으나 차츰 소형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잠자리는 다른 곤충들에 비해 날개가 더디게 진화해 왔다. 나비나 장수풍뎅이처럼 날개를 접어 몸에 바짝 붙이지 못하는 원시적인 날개를 가졌다. 언제나 비행기처럼 날개를 양옆으로 펼치고 생활한다. 짝짓기를 할 때 펼쳐진 날개 때문에 다른 곤충들처럼 수컷이 등 뒤에서 껴안을 수가 없어 암수가 배를 구부려 하트모양으로 사랑마크를 만들어 사랑을 나눈다.

이름 앞에 붙은 의 유래는 첫째, 미성숙 개체의 몸 색깔이 누렇게 익은 밀처럼 생겨서, 둘째, 꿀벌집의 원료인 밀랍처럼 황갈색이므로, 셋째, 성숙한 개체의 배에 밀가루처럼 흰색 가루가 있어서 등 세 가지가 있지만 정설이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다.

필자가 학명의 alb-로 시작되는 라틴어를 찾아보니 albus(흰색, 석회), Albanix(백설공주), alba(백진주) 등 모두가 흰색과 관련이 있는 것을 유추해보면 그나마 세 번째가 더 신빙성이 있고 유의미하다고 여겨진다. 이름에 이 붙은 잠자리는 큰밀잠자리, 밀잠자리붙이, 중간밀잠자리, 홀쭉밀잠자리 등이 있다. 이 중에 홀쭉밀잠자리는 중부지방에 서식하는 종으로 아직 담양에서 관찰하지 못했다.

밀잠자리는 애벌레가 물 밖으로 나와 우화(날개돋이)한 후 점차 온몸, 특히 배에 흰색 가루를 분비한다. 이것은 암컷이 배끝으로 물 표면을 탁탁치면서 수면에 알을 떨어뜨려 번식하는 타수산란(打水産卵)을 하기 때문에 몸이 물에 젖지 않도록 분비하는 물질로 추정된다. 수컷 또한 암컷에게 다른 수컷 경쟁자가 오지 못하도록 수면을 스치듯이 끊임없이 순찰을 돌기 때문에 산란경호(産卵警護) 방수복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숲에 와서 대나무만 보고 간 사람은 대숲에 물이 있고, 그 물속에 밀잠자리가 알을 낳고, 대숲과 물가에서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다는 것이 좀 의아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대숲을 자세히 눈여겨보면 대부분의 대숲 속과 가장자리에는 물이 있다. 담양하천습지 대숲이나 울산태화강 대숲, 담양호숫가 대숲, 죽녹원 대숲처럼 강이나 냇물, 호수, 도랑 등이 있어 지금까지 수천만 년을 살아온 밀잠자리가 앞으로도 영원히 대숲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 ‘기후변화 나비여행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