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마지막 통화
군대에서의 마지막 통화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06.08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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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둘째가 내일 전역을 한다.

조금 전에 전화가 와서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며 자기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얘기해주었는데 한 마디로 종합해 보면 이거였다.

‘이유 불문하고 그냥 무조건 기분 째진다.’

성격이 원만한 편이라 군대생활도 잘 해내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군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그냥 다 힘들었단다.

“동환아, 너 그거 생각나니?”

“엄마. 그거 생각나요?”

우리는 이런 말로 시작되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길 한참이나 주고받았다.

어렸을 때 얘기, 사춘기 때 속 썩였던 일, 외할머니와의 추억, 군대 가기 얼마 전 라오스로 배낭여행 갔었을 때 얘기… 같은 두서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난 뒤, 내가 말했다.

“너 이제 어른이다. 알지?”

“에이, 당연하죠!”

“나오면 신용카드 같은 거 만들고 그러지 마.”

“엄마, 내가 언제 그런 거 가지고 사고 친 적 있어요?”

“지금은 안 그러지만 예전에 사고 친 적 있잖아.”

“제가 언제요?!”

“생각 안 나? 너 초등학교 3학년 때.”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루는 학교 담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학교에서 우리 애 때문에 전체 회의가 열렸다고 했다. 아이들이 다니고 있던 대안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끝장 토론 같은 걸 벌이곤 했는데 주로 아이들 간의 다툼이나 청소, 왕따 문제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원만한 성격의 둘째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크게 싸웠던 적은 없었으므로 나는 조금 놀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요 어머니….”

오늘 학교에서 둘째 친구 용범이가 점심시간에 선생님한테 오더니 ‘떼인 돈’을 좀 받아달라고 하더란다. 누구에게 얼마를 떼인 거냐고 물어봤더니 우리 둘째 이름을 대며 1000원을 빌려가 갚을 생각을 안 한다고 쌤이 좀 대신 받아달라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선생님이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돈을 빌려 갚지 않는 건 중요한 사안이라며 전체회의를 소집했던 모양이었다.

“혹시 동환이한테 돈 빌려주고 못 받은 친구 있어요?”

선생님이 묻자 여기저기서 손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거의 전교생(40명가량)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고 했다. 너무 놀란 선생님은 그 즉시 아이들의 부채파악에 나섰다. 적게는 200원 부터 많게는 2000원까지. 다양한 금액이 종이에 적혀 나왔다.

일단은 전교생에게 돈을 빌린 주변머리의 폭넓음에 놀랐고 그 다음은 돈을 빌려 갚지 않은 아이의 금전 개념이 몹시 걱정된다고 했다.

장작 몇 시간에 걸쳐 긴 회의를 한 결과 동환이는 반성문과 함께 내일까지 부채상환을 하기로 약속했다는 거였다. 나는 그 전화를 받은 뒤 아이의 개념 없는 행동에 몹시 실망했고 부모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에게는 나름의 삶의 원칙 같은 게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없으면 쓰지 말고. 필요하면 벌어 쓰자. 주위 사람에게는 돈을 꾸지 말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그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의 가느다란 종아리를 무섭게 때렸다. 여태 키우면서 한 번도 때려보지 않은 아이였다. 그냥 예쁘고 귀엽고 착하다고만 생각했던 둘째에 대한 배신감과 내 삶의 넋두리까지 얹어 아이에게 화를 냈다.

“엄마가 비록 없이 살아도 남한테 피해 주는 건 절대 용납 못한다고 했지!”

“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아?!!”

“그딴 포켓몬 카드 모아서 부자 될 거야? 어!!”

“엄마 얼굴에 똥칠을 하고도 네가 자식새끼야!!”

둘째는 엉엉 울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었다. 꿇어앉아 반성문을 썼고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모아온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가방에다 동전을 가득 챙겨 넣은 뒤 저녁밥도 먹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날 나는 밤늦게 혼자 맥주를 마시며 같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동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다.

“언니~~ 어뜩해~~. 벌써부터 돈 가지고 속 썩이자나. 언니도 알지? 내가 저 놈 하나만큼은 진짜 예뻐하는 거. 근데 내가 오늘 처음으로 우리 동환이를 때렸잖아~~. 그놈의 포켓몬 카드 회사, 확 불 질러 버리고 싶어~~~!!”

그때, 목 놓아 울고 있는 내게 언니가 그런 말을 했다.

“아니야, 양미야. 생각해봐라. 그 어린 게 그 많은 친구들한테 돈을 꿀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야. 누가 아무한테나 자기 돈 빌려주니? 평소에 잘 하고 믿음을 줬으니 빌려준 거 아냐. 동환이는 그런 재능이 있는 거야. 나중에 커서 유능한 펀드 매니저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안 그래?”

위로랍시고 해준 말이었지만 묘하게 위로가 됐다.

어쨌거나 그 일 이후로 아이가 누구에게 돈을 꿔 쓴 일은 없었다(내가 아는 한). 저도 나름의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

.

그 일에 대해 둘째가 말했다.

“엄마. 내가 그때 엄마한테 처음으로 맞았잖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엄마가 내 종아리를 때리다가 울면서 그랬어.”

뭐라 그랬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뭔가 멋진 말을 하지 않았을까.

“또 한 번만 더 그러면 니 포켓몬 카드 몽땅 다 찢어버린다!!”

별로 멋진 말은 아니었구나….

“내 카드 다 찢어버린다는데 어떻게 또 돈을 빌려. 그래서 그 뒤로는 절대 안 빌렸지.”

군대에서의 마지막 통화를 마치며 아이가 말했다. 이제 제대하고 나오면 돈도 열심히 벌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고, 여기 갇혀 사는 동안 바깥세상이 너무 그리웠다고 했다.

어쨌거나 1년 6개월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무사히 잘 마치고, 국민의 신성한 의무를 다 한 둘째가 내일 나온다. 전역 선물로 포켓몬스터 카드라도 한 박스 사다놓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전화를 끊기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일 집에 있을 거죠?”

“당연하지.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온다는데~~.”

내일은 1년 6개월 만에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이 글은 전역 하루 전날 시점에서 쓰였습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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