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 기억하고 찾는다면 ‘유의미’한 가치 있는 ‘신념’ 될 것”
“역사적 사실 기억하고 찾는다면 ‘유의미’한 가치 있는 ‘신념’ 될 것”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5.05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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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홍범도 연구 권위자’ 장세윤 교수-3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홍범도 연구 권위자’ 장세윤 교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홍범도 연구 권위자’ 장세윤 교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일제가 실제 철도를 만들었다는 등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내세우는 학자들도 있다.

▲ 철도나 도로, 항만, 은행, 학교, 의료기관 등 각종 공공시설과 기관의 주요 이용자들도 거의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이들 철도와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도입과 설치는 일본이나 조선총독부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일본 정부 당국이나 조선총독부 등에서는 식민지 ‘조선’을 개발했다고 크게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들 인프라 스트럭쳐와 공공기관 등의 이용은 거의 일본의 침략과 수탈을 뒷받침하는 데 집중되었고, 한국인들을 동원해 완성된 경우가 많았다. 그 혜택도 거의 일본인이나 식민지 통치 당국 및 관련기관이나 단체에서 독점했다. 말하자면 식민지의 한국인 민중들은 이용과 혜택에서 소외되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나 일본 정부 당국은 식민지 ‘조선’에도 경성제국대학을 세워 고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과 일본인, 조선총독부를 위해 설립되고 운영된 식민지 대학이었다. 입학생과 졸업생들의 2/3는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1/3에 불과했던 것이다. 또 이 대학에 한국인 교수나 직원은 거의 없었다.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이나 조선총독부 설립 병원 역시 일본인을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이나 총독부에서는 약간의 한국인들에게 무료 의료혜택을 주면서 이를 크게 선전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주요 의료시설이나 공공기관은 주로 일본인을 위해 설립, 운영되었다. 마쓰모토 다케노리 도쿄대 교수는 한․일 양국의 교과서 서술에서 일상생활 서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최근 한국교과서는 그러한 흐름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또 그는 “과연 일본의 식민지배는 조선을 잘살게 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오히려 조선으로부터의 자금유출액이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러한 주장을 반박해 주목을 끌었다. 일부 일본인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서술을 통해 한일 양국의 진정한 상호이해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점하려 했다. 과거에 비추어 일본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 과거 2000여 년의 한일관계 역사를 보면 한국인들의 일본관이 좋을 수가 없다.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 임진왜란, 근대 일본의 침략과 한국 식민지화 등 한국의 피해상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일간에 분쟁과 분란의 시기보다는 평화와 우호의 세월이 더 길었다고 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웃 국가와 사이좋게 잘 지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소통과 교류, 이해, 신뢰가 필요하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일본 사회는 비교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였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 아베총리 등 우익인사가 총리가 되고, 일본 사회가 우경화한 바 있으며, 한국의 역량이 성장하면서 일본사회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본다. 근래 한일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전자부품 수출제한, 북한관계, 특히 최근 일본 동북부 원전 오염수 방류 등의 문제 등으로 더 악화되는 듯하다. 어쨌든 악화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상호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되었으면 한다. 특히 북한 핵문제 등 정치 분야는 물론, 경제-무역-문화교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 분야 등에서도 민관 협력과 교류를 통해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 한국인들도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거시적 시각으로 폭넓게 일본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한.중.일(대만) 등 동아시아 각국이 아직 ‘아시아’또는 ‘아시아인’이라는 인식이나 판단은 미약하다고 생각되지만, 장기적으로 EU(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할만 하다.

 

- 위안부 문제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어떻게 풀려야 할지.

▲ 인도와 정의의 관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공창제와 ‘자발성’ 문제로 본질을 왜곡하며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질문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어떠한 관점에 서 있는가, 확실한 역사적 정보를 반영한 것인가,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인가 등 반문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원칙인 피해자 중심적 접근은 문제의 인식을 김학순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로 되돌리려는 정치적 공세를 비판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시동원의 강제성과 조선총독부의 역할이 주요쟁점인데, 일방적 납치에 의한 강제는 아니더라도 강제성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본다. 단기간에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나아가 미국, UN 등 국제사회와도 협력하면서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라 할 수 있다.

 

- 올해, 학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슈는.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의 개인적 의견을 피력할 뿐이다. 우리나라 학계가 구미 열강이나 중국, 일본 등의 학계에 비해 규모도 작고 여러 가지 상황이 열악한 실정이다. 나름대로 건강한 비판정신이나 다양성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언론, 유력 단체, 기업 등에서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간다고 휩쓸리는 그런 학계가 아니다. 이는 한국근현대사나 최근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근현대사 학계에서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이를 비호하는 일부 세력에 대한 대응이나 비판작업, 그리고 최근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논문이 촉발한 일본군 위안부 진상의 왜곡에 대한 일련의 대응과 비판 작업이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 이른바 ‘한류’의 세계적 확산에 따른 한국문화의 전파, 그에 따른 일련의 학술적 성과 제고도 필요하고, 정부 관련 기관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는 상호이해와 양방향의 상호소통, 진정한 애호 등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등 관(官)주도의 일련의 작업이나 간섭, 일방적 지원은 삼가야 할 것이다. 또 제가 보기에 100년 전에 있었던 워싱턴회의 관련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대응 문제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아직까지 학계에서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다. 한국독립운동사, 한국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고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또 한 사건은 앞에서 말한 홍범도 장군과도 관련된 문제인데, 1921년 6월 러시아 자유시(현재 스보보드니)에서 있었던 ‘자유시사변’이다. 이 주제는 관련 학회 등에서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 미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 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사건이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한 개인에게는 너무나 무자비하고, 때로는 무심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중요한‘찰나의 순간’을 잘 포착하고 적극적으로 잘 대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언급한 내용, 그 중요성은 어느 정도이며 대중성을 담보하려면 각계각층에서 어떤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앞서 언급한 위안부 문제와 한류 문제는 굳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부와 관련 연구기관, 학계가 가능한 한 협조해 공동대처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자 맡은 역할과 기능이 있고, 경우에 따라 견제와 균형을 도모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꼭 협조할 분야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관련 협의회 등을 구성해 머리를 맞대고 공동 대응을 했으면 한다.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고 경우에 따라 선도해갈 수 있는 섹터가 또 학계가 아닌가 한다. 특히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가 있는 대학 소속 연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중성을 담보하려면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설득력, 좀 크게 보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필요성이나 시의성,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시각과 방법론, 그 소재와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또 예산 배정 등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후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끝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역사를 공부하기보다는 역사(과목)를 통해(활용해), 역사에서 잘 배울 필요가 있다. 과거 사실과 그에 대한 인식과 평가.해석 등을 자기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러한 사실과 해석이 오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잘 성찰했으면 좋겠다. 과거 우리는 역사를 흔히 도덕적 관점에서 자신이나 우리 사회를 비추어보는 ‘거울’로 비유했다. 오늘날의 역사학은 그리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인문․사회․자연과학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종합학문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정리, 연대기적 서술보다는 과거 사건이나 사실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일어났으며, 후세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인과관계나 전후맥락, 국제관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더 좋은 것은 자신의 집이나 주변에서 관련 기록이나 유적․유물을 찾아보고, 가족들이 살아온 이야기, 예를 들면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외할아버지.외할머니 등 어른들이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아보고, 실제 생활에서 자신의 기록이나 이야기를 남기는 등 응용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때 과거(사실)는 ‘없음(부존재)’에 불과하지만, 과거의 특정 사건이나 사실, 인물들을 기억하고 찾는다면 그것은 ‘있음(존재)’, 나아가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신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100여년 전의 역사, 독립운동, 독립전쟁을 기억하고, 주체적 결사항전의 정신과 의미를 찾으며, 이것을 미래 신념의 가치로 되살릴 수 있는 다각적 조사․연구와 교육, ‘이야기하기’ 등의 일련의 기억 장치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를 매개로 ‘반성과 성찰’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은식 선생의 불후의 명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나온지 100년이 넘었다. 한국인에 의한 주체적 시각의 한국근대사, 독립운동사 연구는 사실상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은식 선생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주체적 역사인식을 교육자들이 주목하고, 어려운 현실을 타파하려는 예리한 현실인식과 실천적 역사관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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