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여행④ 먹그림나비
나비여행④ 먹그림나비
  • 담양자치신문
  • 승인 2021.05.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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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기후변화 나비여행 ④ 묵향 따라 천리 길, 먹그림나비 -송국 담양에코센터장

기후온난화에 의해 먹이식물이 북상하면
먹이를 따라가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옛 선인들이 남도에서 수묵화의 꽃을 피워 서해안을
따라 서울 경기지방에 먹그림을 전수했듯이
먹그림나비 역시 이 묵향길을 따라 북상해
불과 40여년 만에 천리 길을 날아가고 있다

 

먹그림나비, 담양 가마골생태공원
먹그림나비, 담양 가마골생태공원

 

④ 묵향 따라 천리 길, 먹그림나비

먹그림나비(Dichorragia nesimachus)는 지금으로부터 약 25백만여년 전 신생대 제3기의 중기에 출현했다. 이후 한랭한 빙하기와 온난한 간빙기를 여러 번 거치며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기후대의 이동 등 극심한 기후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를 거듭해 온 나비이다. 일본, 대만, 중국남부, 히말라야, 동남아시아 등지에 서식한다.

먹그림나비로 이름이 지어진 것은 나비학자 석주명 선생의 조선 나비 이름의 유래기에서 묵류(墨流) 표면에 나타나는 무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서는 남부에만 있을 뿐이고 아주 희귀하다.’라고 기록돼 있다. 더불어 선생의 유고집 한국산 접류 분포도를 보면 1950년 이전에는 제주도와 전라남북도, 경상남도에서 소량의 채집 기록이 있다.

1980년대 초 필자 역시 학창시절에 이 나비를 관찰 채집하려고 전북 고창의 선운산까지 내려와 채집여행을 하고 올라간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북도와 경기도까지 서식지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흔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특히 인천광역시 무의도까지 분포 확대 추세에 있어 환경부에서는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 나비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나도밤나무, 합다리나무 등 나도밤나무과의 잎 뒷면에 알을 낳는다. 성충은 5월부터 8월까지 연 2회 발생하며 꽃에서 꿀을 빨지 않고 주로 나무의 수액이나 발효된 과일즙을 먹는다. 가끔 산기슭에 있는 축사에서 흘러나온 오물이나 축축한 땅바닥에서 물을 흡입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번데기 상태로 혹독한 추위를 견딘 후 이듬해 봄이 되면 우화한다.

어린 아이들처럼 음식투정을 하여 엄마들을 애타게 하지는 않지만, 분명 이 녀석의 애벌레는 편식장이임에 틀림없다. 산야에 널려있는 아무 식물의 잎이나 먹지 않는다. 나비들은 각 종마다 먹는 식물이 달라 좋아하는 식물만 먹는 기주특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에 의해 먹이식물이 북상하면 그 먹이를 따라 함께 동행 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옛 선인들이 묵향의 고향 남도에서 수묵화의 꽃을 피워 서해안을 따라 서울 경기 지방에 먹그림을 전수했듯이, 먹그림나비 역시 이 묵향길을 따라 북상해 불과 40여년 만에 천리 길을 날아가고 있다. 이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1년에 두 번 발생하므로 무려 80여 세대를 거쳐 고행의 장거리 행군을 하고 있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피해 만주 벌판으로 이주하듯이.

먹그림나비는 주로 너도밤나무과(참나무과)의 수액을 빨아 먹는다. 이 액체 속에는 나비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생리작용 등을 위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할 양분이 있다. 대부분이 물이지만 당분과 칼슘, , 마그네슘 등 각종 무기염류와 비타민이 함유돼 있는 종합 영양제이다.

산길을 가다보면 참나무 기둥의 상처 난 곳에서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곤충들이 사이좋게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부산하게 움직이며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상호간에 먹이경쟁의 서열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선한 수액이 나오는 중앙에는 장수풍뎅이가 자리를 잡고, 다음이 톱사슴벌레나 넓적사슴벌레, 그 다음이 풍이와 점박이풍뎅이, 그리고 장수말벌이나 말벌, 마지막으로 제일 가장자리에 먹그림나비와 청띠신선나비 등 네발나비과의 나비들이 눈칫밥을 먹는 걸 볼 수 있다.

먹그림나비는 나비목 네발나비과에 속한다. 모든 곤충은 발이 여섯 개인데 네발이라고 하니 참 이상하기도 하겠지만 이 나비 역시 다리가 6개이다. 다리가 비교적 굵고 튼튼해 착지나 날기 위해 도약하는데 앞의 두 다리는 불필요하므로 작게 퇴화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입 주변에서 먹이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감각기능의 입술수염 역할을 하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먹그림나비는 묵향길을 따라 가고 싶지 않은 고난의 기후변화 여행을 떠나고 있다. 예향인 담양의 생태숲에서 먹그림을 그리며 자손 대대로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운 여름철에 에어컨을 켜기보다는 먹의 향기가 서려있는 부채를 애용하는 멋스러운 작은 실천을 기대해 본다./담양자치신문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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