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 40년전 그날을 그리며 오월영령 추모하다
담양에서 40년전 그날을 그리며 오월영령 추모하다
  • 조 복기자
  • 승인 2020.05.28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일 담양 중앙공원…차량행렬 재현, 5·18묘역 합동참배
5.18 시민군 트럭 재현 차량행진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를 갈망했던 40년전의 5·18 외침이 담양에서 울려펴졌다.

담양5·18 민중항쟁 40주년 기념행사위원회는 지난 27일 읍 중앙공원에서 기억하라! 오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라는 주제로 5·18 민중항쟁 40주년 기념 담양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고병주 부군수, 정철원 군의회부의장을 비롯한 각급 단체장과 담양기념행사 추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40년전 그날을 기리며 오월영령을 추모했다.

공식행사는 국민의례와 윤영민 행사추진위원장의 기념사, 고병주 부군수와 정철원 군부의장의 추념사 순으로 진행됐다.

또 연희놀이예술단의 진혼무·살풀이·대동북춤, 담양문인협회 임경희씨의 김정원 한빛고 교사 가 지은 ‘5·18묘지에서 생각한다시낭송, 담양여성합창단의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 등이 이어졌다.

행사위원회는 담양군 14명의 5·18 희생영령을 기리는 작은 만장을 행사장 한켠에 설치해 주민들에게 알렸고, 5·18 인권과 생명을 소중히 하자는 취지로 참가자에게 약초화분을 나눠줬다.

아울러 기념행사에 참가한 참석자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다.

5·18당시 폭압에 항거했던 시민군의 차량시위를 재현하는 읍 시가지 차량행렬은 중앙공원을 출발해 신남정사거리-담양문화회관-중앙로-담양재래시장-대나무박물관 코스를 거쳐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했다.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한 이들은 합동참배를 한 뒤 고규석·임은택씨 등 담양출신 5·18희생자 14명의 묘지를 찾아 헌화하며 오월정신 계승을 다짐했다.

5·18민주묘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담양예총 국근섭씨의 5·18 영령의 넋을 기리는 진혼무 공연이 펼쳐졌다.

윤영민 행사추진위원장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많은 군민들이 오월영령을 추모하는 담양기념식에 참여해 감명을 받았다하루빨리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도록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정상 가동되고, 5·18 왜곡·폄하 관련 처벌법도 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위원회는 619~20일 창평면 농민건강증진센터에서 중·고생과 5·18세대가 참여하는 제35·18내일학교를 개최하고, 담양에서의 5·18을 발굴·기록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담양출신 5·18희생자 명단

담양출신 14, 국립5·18민주묘지에 잠들다

 

1980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 행방불명된 담양출신 14명의 민주영령들이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한다.

 

계엄군 총탄에 목숨을 잃은 영령

고규석=1941년생으로 대덕면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마을 이장직을 비롯해 새마을 지도자, 소방대장, 예비군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1980521일 이웃에 사는 임은택씨와 광주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광주교도소 옆 고속도로에서 흉부관통 총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증언한 고영택씨의 부친이다.

묘비문 : 기다리다 기다리다 꿈속에서도 잠 설치며, 한밤 새도록 문밖을 서성이는 날 오셔야할 아버지 기다리는 부정. 부디 편히 잠드소서!

김용표=1957년생으로 군대에서 훈련 도중 뇌를 다쳐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의가사 제대를 했다.

521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다 계엄군에게 쫓겨 대인동 친척의 가게에 숨었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노동청 앞에서 게엄군의 총탄에 전견부 관통상을 당하고 숨졌다.

묘비문 : 그날의 아픔을 어찌 잊으리. 태극기 손에 들고 울분을 외치며 시내 행진하던 모습을. 내 가슴에 묻은 장한 아들아 고이 잠들어라.

박민환=1955년생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신학대에 진학하고자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하며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521일 이른 새벽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과 함께 차를 타고 도청 앞으로 향하다가 머리부분에 총에 맞았다.

묘비문 : 신학교를 졸업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나라의 정의를 위해 살려고 했던 너. 편히 쉬거라.

임은택=1945년생으로 대덕면에서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521일 광주에서 군인들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수금하러 가기로 마음먹고 마침 광주에 볼일이 있던 고규석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계엄군이 쏜 총탄에 광주교도소 옆 고속도로에서 대퇴부와 우하퇴부 관통상과 우견갑부 및 견갑골 골절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묘비문 : 아버지 당신의 숭고한 뜻은 우리에게 커다란 사랑으로 남아 바른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시고 부디 편히 잠드소서

김병연=1962년생으로 국립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학원에 다니던 중 갑자기 학원에 공수부대가 난입해 속절없이 잡혔다가 이튿날 풀려났다. 자취방 주인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상황을 알렸다.

522일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부모님이 계시는 담양으로 내려가던 길에 광주교도소 부근 보리밭 길에 매복해 있던 제3공수여단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박현숙=1962년생으로 송원여상 3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520일 시신을 담을 관을 구하고자 화순으로 가는 소형버스를 탔다. 버스가 주남마을을 지날 때 요란스러운 총소리와 함께 운전수가 쓰러졌고, 버스는 도랑으로 빠졌다. 차 안으로 총을 바짝 치켜든 군인들이 몰려와 마구 총을 갈겼고 박현숙 씨는 일곱 발의 총알에 맞아 두부, 흉부, 하복부 전신총상을 입고 꽃다운 인생을 마쳤다.

묘비문 : 참된 자유와 민주화를 위하여 촛불처럼 제 몸을 태우는 사랑과 희생을 몸소 실천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되었습니다.

 

부상을 입고 살다 세상을 떠난 영령

양승길=1963년생으로 198711일 세상을 떠났다.

묘비문 : 사랑하는 승길아! 엄마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서 같이 있단다. 기쁨의 얼굴로 다시 만나자구나. 편안히 잠들어라.

김병채=1936년생으로 200211일 숨을 거뒀다.

묘비문 : 정의와 평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당신의 봄은 갔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그 사랑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그대 이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께서 마련한 의의 월계관을 쓰고 영원한 안식을 구하소서!

이방기=1934년생으로 200754일 가족의 곁을 떠났다.

묘비문 : 임은 지상에서도 별 하나였습니다. 자신의 몸 금강석처럼 돌 벽에 꽂고 민족과 역사, 민주주의나무 키우며 세상의 어둠을 밝힌 별이었습니다. - 시인 김준태 조시 -

조철재=1951년생으로 2007926일 숨을 거뒀다.

묘비문 : 오월항쟁 희생자 임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제 민주성지 이곳에서 편히 잠드소서

장한환=1954년생으로 2008512일 세상을 떠났다.

묘비문 :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묵묵히 궂은일 도맡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의 온기를 저희는 잊지 않고 육신을 여기에 모시니 55년 고단한 생을 끝맺음 하시고 천국에서는 행복하소서.

이상조=1933년생으로 1994115일 세상과 이별했다.

묘비문 : 이 땅의 민주화와 교육의 선구자로 한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가족과 제자를 위해 헌신하신 아버지. 이젠 편히 쉬소서. 크기만 한 텅 빈자리 가족의 사랑과 번영으로 가득 채워 주소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행방불명자

이옥섭=1960329일생이다.

묘비문 : 병군아. 나라위해 정의롭게 싸우다 간 너의 모습을 그리면서 하나님의 품안에서 기쁨으로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재몽=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묘비문 : 이 영혼을 부르신 그리스도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