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대덕면 거주 5·18 유족의 원통한 사연
담양 대덕면 거주 5·18 유족의 원통한 사연
  • 김정주기자
  • 승인 2020.05.19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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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계엄군 총탄에 희생…폭도 자식 낙인 억울한 삶

 

18일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무대에 오른 최정희(73)씨는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5)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한 맺힌 40년 세월을 토로했다.

TV5·18 기념식을 지켜본 담양군민들은 대덕면에 사는 최씨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암매장된 모습으로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던 원통한 사연이 소개되자 눈물을 훔쳤다.

부산 출신인 최씨는 국제시장에서 임은택씨를 만나 결혼생활을 하다 79년 임씨의 고향인 대덕면으로 이주했다.

남편은 경운기 부속과 벽지를 구매하는 등 볼일이 있는 같은 마을 주민 3명과 함께 소를 판매한 대금을 받으러 광주로 길을 떠났다.

오후 8시 무렵 볼 일을 마치고 담양으로 돌아오던 임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뒤편 도로에서 3공수여단 군인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임씨와 고규석(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부친)씨가 숨지고 박만천·이승을씨는 상처를 입고 겨우 빠져나오는 참변을 당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으로 애가 타던 최정희씨는 뜬눈으로 날을 새고 다음날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두 양반이 총에 맞아 쓰러질 때까지는 살아 있었는데 그 뒤로 어찌 됐는지는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박만천·이승을씨의 말에 곧장 광주교도소 주변으로 달려갔다.

최씨는 보리밭이든 산속이든 가리지 않고 땅을 조금만이라도 판 흔적이 있는 곳이면 맨손으로 파헤쳤다.

계엄군들에게 니놈들이 총을 쐈으니 우리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알 것 아니냐고 울부짖었지만 계엄군들은 총을 들이대며 돌아가라고 윽박질렀다.

남편이 탔던 차량에 수많은 총탄자국과 혈흔이 남겨져 있는 것을 확인한 최씨는 주변 도랑에서 남편의 신발 한 짝과 웃옷을 집어들고 광주시내 병원과 야산을 뒤지고 또 뒤진 끝에 531일 다른 희생자 7명과 함께 광주교도소 관사 뒤 흙구덩이에 암매장된 남편을 찾아내 담양선산에 안장했다.

최씨는 남편의 제사를 지내고 부산으로 돌아갔지만 친정식구들까지 미행하는 형사들의 감시로 다시 담양으로 돌아왔다.

당시 신군부는 자신들의 민간인학살을 폭도들이 교도소를 습격한 사건으로 왜곡·조작했다.

때문에 당시 12, 10, 6살이던 자녀들은 장성하기까지 폭도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받고 억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최정희씨는 편지에서 광주에 수금하러 나갔다가 열흘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억울한 일을 우리 아들, , 손자들이 다시는 당하지 않게 하려고 광주의 일을 세상에 알리고 다녔다고 회상한 뒤 우리 다시 만나는 날 너무 늙었다고 모른다 하지 말고 삼남매 반듯하게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고 칭찬이나 한 마디 해달라고 사무친 그리움을 전했다.

한편 1981년 담양선산으로 이장된 고 임은택씨는 19975·18국립민주묘지로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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